예레미야서 14:7~9, 19~22
전국의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에게 성삼위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작금 코로나19 전염병으로 말미암아, 온 나라가 우리가 일찍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순간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고통 당하고 있는 대구, 경북의 목회자들과 장로님들께 주님의 위로를 드립니다.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인데, 지금은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도 없고 성도들 없이 목사와 장로들만이 예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온라인 영상으로 송출하므로 성도들은 영과 진리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예배를 <보는>상황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온라인 영상으로 예배를 보니 잠옷 바람으로 영상을 봐도 예배라 할 수 있는지요? 또 다른 교회들은 정부의 권고와는 관련 없이 하나님께 전과 같이 공예배를 드리는 곳도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 지자체의 장들은 교회의 예배를 못하도록 심지어 벌금까지 물리게 한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어쨌든 이러한 사건들은 코로나19와 관련된 것이고, 이 괴질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가고 있어 심히 염려가 됩니다. 코로나19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없는 목사와 장로의 아픔을 불신자들은 모를 것입니다.
제가 오늘 이 설교문을 작성하게 된 동기는 이 모든 환란과 재앙을 보면서 먼저 목사, 장로들이 자신을 돌아보고자 함입니다.
저는 54년 전에 시골 개척교회를 해봤고 목사 된지 52년 동안 신학교 교수로, 총장으로, 합동 측「전국 목사 장로 기도회」의 설교 주 강사로 40여년간 봉사한 경험이 있기에, 감히 전국의 모든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에게 한 편의 설교를 보내드림으로, 하나님이 제게 주신 위로와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럼 오늘 우리 목사와 장로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익히 아시는 데로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예레미야는 남 유다에서 예언하면서 백성들의 죄악을 아파하면서 외치며 눈물로 기도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는 북쪽 이스라엘의 죄악도 크지만 남쪽 유다의 죄는 더 크다고 소리쳤습니다. 렘14장은 유다에 큰 한재(旱災) 곧 가뭄의 재앙이 내려져서, 유다 온 나라가 슬퍼하며 애통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비가 안와서 우물가에 가도 물이 없으니 빈 그릇으로 돌아오고,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어 내 버리며, 들 나귀들은 벗은 산 위에 서서 승냥이 같이 헐떡거리고만 있습니다. 말 그대로 유다는 국가적 큰 재난의 한 복판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절박한 위기 가운데 선지자 예레미야는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 기도의 내용이 오늘 본문 렘14:7~9절까지 입니다. 예레미야의 기도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의 죄를 문제 삼는 것보다, 먼저 선지자 자신과 선지자와 함께 사역하고 있는 자들의 죄악을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예레미야는 그의 첫 번째 기도에서 <우리>란 단어를 7회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두 번째 기도에서 <우리>라는 단어는 10회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국가의 재앙은 먼저 영적 지도자인 자신들의 책임이라고 하나님께 아룁니다. 오늘의 우리 목사와 장로들은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들입니다. 국가와 교회의 환난과 고통의 시간에 목사와 장로들이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무슨 죄악이 있는지 살피는 것이 먼저인줄 압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구체적으로 죄악의 내용을 말합니다.
즉 <우리의 죄악>, <우리의 타락>, <주께 범죄>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국가의 재난에 대한 선지자 예레미야의 인식은 옳았습니다. 우리는 정부를 비판하기 전에, 이단을 비판하기 전에, 백성들의 죄를 지적하기 전에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지도자> 곧 목사, 장로들의 죄악과 연약함을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레미야가 고백했던 <우리의 죄악>과 <우리의 타락>이 오늘 우리 한국 교회와 지도자들의 죄악과 타락은 무엇일까요?
예레미야가 말한 죄악과 타락은 유다의 영적 지도자가 제구실을 못하고 하나님께 멀어졌습니다. 오늘로 말하면, 「목사가 목사 답지 못하고, 장로가 장로 답지 못하다」는 것에 있었습니다.
목사와 장로가 모두가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목사의 첫째 사명은「하나님의 말씀 곧 복음을 가감 없이 전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복음의 내용과 상관없이, 매우 인본주의적이고 유물주의적 세계관에 매몰되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증거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교회성장을 위해서라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숫자 늘리기에만 올인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Coram Deo)의 개혁자들이 외쳤던 정신에도 맞지 않고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사상과도 거리가 먼 것입니다. 목사님들은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로이든 존스 목사의 말처럼「설교자(preacher)가 아니고 강단꾼(pulpiteer)」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목사가 강단을 사용하여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목사의 타락이요 목사의 죄악입니다. 즉, 부끄럽게도 오늘의 목사들은 진실하게 인간의 전적 타락과 그리스도 안에 구속과 하나님의 거져 주시는 은총의 복음을 증거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장로들도 문제입니다. 장로님들은 삶의 현장의 최전선에 있습니다. 하지만 주일에만 훌륭한 장로일 뿐이고, 평일에는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와 아무 상관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곧 죄악입니다.
그러므로 목사와 장로들은 하나님의 주권이 주일날 교회당 안에서만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 학교, 정부 등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제가 48년 전에 화란에서 공부할 때 칼빈주의 사상인 대가인 헬만 도예베르트(Herman Do-oyeweerd)박사를 방문했습니다.
제가 “박사님의 사상의 근거가 무엇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시119:105절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라는 말씀을 하면서 자신은 이 말씀 위에 신학, 철학,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교육 등 모든 삶의 영역이 하나님의 말씀을 표준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다」라고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장로가 무슨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교회에서만 훌륭한 장로이고 세상에서는 불신자처럼 사는 것은 죄악이요 타락인 것이 분명합니다.
오늘 한국 교회 성도들은 열심도 있고, 가슴도 뜨겁고 찬양도 잘 하지만, 언제나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 없이 사는 이원론적(Dualistic)세계관이 큰 문제입니다.
그러니 성도들은 세상의 소금도 못되고 빛도 못되고 오히려 세상의 비난 거리가 되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의 기도의 끝에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시고>,<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라고 간곡히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본문 10절~18절에서 선지자 예레미야의 기도를 듣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11절>,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12절>,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는도다-14절>,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15절>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지만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시요, 심판의 하나님도 되십니다. 오늘의 한국교회 강단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만 말할 뿐이고, <하나님의 공의>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는 아예 침묵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의 죄악을 책망하지 않고, 늘 똑 같은 레파토리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면 이 세상에서 행복해지고 복 받는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거짓예언>이라고 합니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이런 음성을 들었을 때, 그는 낙심 하지 않고 다시 한 번 더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한 번 기도해 놓고 응답이 없다고 낙심하지 말고, 그 응답이 이루어질 때까지 또 기도하고 다시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상태가 참으로 부끄럽지만 그래도 하나님께 나아가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레미야의 두 번째 기도는 본문19절~22절입니다. 그의 두 번째 기도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19절> 예레미야는 선지자이지만 오히려 제사장적 기도로 “우리를 치료해달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이 기도야말로 오늘 우리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할 기도인줄로 믿습니다. 속히 코로나19의 괴질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치유의 역사가 이 땅 가운데 일어나며, 예배가 온전히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는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20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했지만 선지자 예레미야는 선지자와 일반대중들을 분리하지 않고 <우리의 악>이라고 말하면서 선지자도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먼저 우리의 부족과 연약과 죄를 인정해야 기도가 상달 됩니다. 영적 지도자의 약점은 자신의 죄와 연약을 인정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지도자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그리고 <우리 조상의 타락>을 언급하면서 이스라엘 조상들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범죄한 죄를 통회 자복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이 어려운 비상 시국에 먼저 목사와 장로들이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들과 우리 조상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의 발 앞에 엎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기도하기를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21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선지자는 하나님께 매달리기를「유다 민족이 염병과 기근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영광이 손상되지 말아달라」고 했습니다. 예레미야의 기도는 유다에게 내려진 벌이 오래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리워질 것을 염려했습니다. 그리고 택한 백성과 언약(Covenant)을 기억해달라고 매달렸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과의 언약을 반드시 지킬 것임으로 그 회복도 속히 될 줄로 믿습니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한국 교회 목사님들, 장로님들!
오늘 저는 예레미야 14장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본문의 메시지에 비추어 오늘 한국교회 목회자들과 장로님들의 자화상을 살펴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의 열쇠를 잡고 계십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오른손에 일곱 별과 일곱 촛대 사이에 운행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즉, 주께서 세우신 교회를 주께서 관리하시며 지키실 줄로 믿습니다.
세상의 모든 칼과 기근과 염병(12절)이 결코 우연히 된 것이 아니고 분명히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시는 깊은 뜻이 있다고 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주셨던 메시지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과 장로님들 곧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인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하나님께 겸손히 엎디어,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통회하고 자복한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이 환란의 때를 지나고, 예배가 정상적으로 회복되는 은혜의 날이 속히 올 줄로 믿습니다.
<여호와여 주는 그래도 우리 가운데 계십니다-9절>
성삼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과 축복이 한국의 모든 목회자들과 장로님들께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아 멘-
2020, 3, 11. 정성구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