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만제씨는 막 쪄낸 찐빵, 교회 안가는 77가지 이유와 예수 안 믿으면 손해 보는 이유 77가지라는 책을 썼는데 그 내용인즉 예수 안 믿으면 죄 사함도 없으며 구원이 없고 생명이 없고 천국이 없고 평안이 없고 자유와 안식이 없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의 기질과 우리의 천성이 바뀌어 온전한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전기의 음극과 양극이 만나면 스파크가 일어나고 사건이 있는 것처럼 예수의 생명을 한번만 접촉하면 우리의 전인격이 거듭나며 새롭게 되며 큰 변화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3월 봄이 되면서 이 나라뿐 아니라 우리 삶과 신앙에도 큰 변화의 바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Ⅰ. 바울의 삶의 변화입니다(1,9,10).
바울 스스로도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로 무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거듭나고 주님과 교회에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고 딤전1:13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 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그리고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감옥에 갇히는 환란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리는 의연한 마음을 갖고 9절에는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가 되었다고 하였고 그리고 10절에는 감옥에 갇힌 가운데서도 낙심과 원망하지 않고 오네시모를 복음으로 낳는 큰 감격도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복음을 전하는 것이 특별한 장소와 시간이 없고 지금 이곳이 복음을 전할 때로 알고 순종하는 삶을 살았으니 그는 역시 예수로 충만하고 전도자였습니다. 그를 통하여 빌레몬과 오네시모가 예수를 믿게 되었으며 이후에 교회에 훌륭한 일꾼으로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벧전 2:10 “너희가 전에는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라고 고백하는 바울을 통해서 변화 받은 다른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빌레몬이요 다음은 오네시모라는 사람입니다.
Ⅱ. 바울의 전도 받은 빌레몬의 변화입니다(1-2).
예수를 믿고 예수를 만나면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이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1)사랑을 받고 인정을 받습니다.
빌레몬은 1절에 사도바울이 빌레몬을 사람 받은 자라고 편지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게 되면 주님께 사랑을 받고 사람에게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의 사랑은 절대적이며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2)주의 동역 자가 되는 것입니다.(1)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우리가 함께 주의 일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기용하신 다는 것입니다. 나를 충성스럽게 여김으로 중한 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통해서 일하십니다. 저는 여러분과 함께 주의 일을 감당하는 동역자의 관계입니다.
3)가정이 구원받았습니다.
행16:31절에 “주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빌레몬의 가정은 아내 압비아가 동역자의 위치에서 자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아들 아킵보는 그 집에 군사로써 주의 일을 감당하는 자녀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집에 있는 교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가정을 오픈 하우스해서 모든 이들을 초청하여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2).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의 가정과 예수 십자가를 억지로 진 구레네 시몬은 결국 그의 아내와 그의 아들은 이후에 안디옥교회에 훌륭한 일꾼으로 쓰임을 받게 되었고 행10장에 고넬료의 가정입니다. 온 식구들이 한 마음이 되지 않았다면 봉사와 헌신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Ⅲ. 바울에 의해 전도 받은 사람 오네시모의 변화입니다(11-16).
갇힌 중에 낳은 오네시모는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부모와 자식 간의 양육과 사랑으로 오네시모를 주의 복음으로 낳았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를 향하여 ‘믿음 안에서 참아들’이라고 부릅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 도망 나온 범죄자입니다. 로마의 감옥에서 만나 바울의 전도로 주님을 영접하게 되며 주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된 자입니다. 바울 안에 사시는 주님을 영접하여 변화를 받습니다.
고대사회에서 종의 제도는 하나의 관습으로 노예가 된 사람이 있습니다. 혹은 전쟁의 포로나 노예상인에게 팔려와 종이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재산목록으로 등록되며 매매할 수 있었습니다. 운이 좋으면 도망자(Fugitivus) F자를 이마에 찍습니다. 그래서 탈주자란 낙인을 찍는 것입니다. 변호의 법적인 근거는 주인의 친구나 동료 중에 도망자를 보증하여 신뢰하면 회복시키는 예가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종으로 범법자로 바울을 만나 거듭난 것입니다.
1)무익한 자가 유익한 자로 변화하였습니다.
오네시모는 유익한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졌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유용한 사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는 존재로 지으신 것입니다.
세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벌과 같은 사람은 모든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입니다. 개미와 같은 사람은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거미와 같은 사람은 남에게 해만 끼치는 사람입니다. 무익한 도움이 안 되는 사람입니다. 오늘 오네시모는 나와 너의 유익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이제는 주님의 기업을 누릴 후사로 유익한 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결국 원상태로 돌아오는 법입니다.
2)바울의 심복으로 변화 받았습니다.(12)
심복이라는 말의 뜻은 "내장" 또는 "심장"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의 애정이 깃들어있는 마음을 뜻합니다. 이 구절의 정확한 번역은 "그는 곧 나의 심장이다(my own hear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자신의 심장을 돌려보낸다는 말씀입니다. 심복이란 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것입니다. 나의 애정과 나의 정열과 나의 마음을 그대로 실어 보내는 것, 그가 곧 내 자신이라는 뜻입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의 심복이요 바울은 곧 그리스도의 심복입니다.
3)종의 신분에서 사랑 받은 형제로 신분이 바뀝니다.
육신의 노예지만 주안에서는 형제가 된 것입니다.
16절에 ""이후로는 종과 같이 아니하고 종에게서 뛰어나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고 했습니다. 형제란 사랑의 교분 뿐 아니라 동역자로 보는 것입니다. 바울은 앞으로 전개될 신비한 사역을 바라보고 기뻐하며 큰 애정과 사랑으로 그를 빌레몬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오네시모는 참으로 미천한 종의 신분이었습니다. 바울은 오네시모에게 잘못된 것이나 빚진 것이 있으면 자신이 갚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그를 자신의 심복으로 믿고 자신의 형제로 받아 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무익한 사람이 아니라 유익한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추천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그를 향한 사도 바울의 애정과 구속적인 사랑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새사람을 입은 바울은 빌레몬에게 종이나 주인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이 모두가 주 앞에 동등한 형제로 차별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신학자 윌리암 바클레이는 옛날의 역사를 예로 들어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옛날에 노예제도가 있었습니다. 노예는 한번 노예로 팔리면 일생동안 노예입니다. 아무 소유권도 없습니다. 그의 재주, 그의 능력, 그가 버는 돈도 전부 주인의 것입니다. 그에 관한 한 무엇이든지 다 주인의 것입니다. 생명 자체가 주인의 것입니다. 때때로 노예가 주인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충성되고 아주 진실 되게 일을 하면, 주인이 그것에 감동을 해서 자기 소유에서 얼마의 돈을 줍니다. 그러면 노예는 이 돈을 신전에 갖다 맡긴다고 합니다. 그 다음에 또 노예가 얼마동안 일을 잘하여 주인이 기분이 좋고 만족스러울 때에 얼마의 돈을 주면, 노예는 다시 그것을 신전에 갖다 맡기고, 또 주면 맡기고.....이렇게 하기를 반복하여 그 액수가 어느 정도로 차면 노예는 주인을 모시고 신전에 가서 그동안 모아! 두었던 돈을 찾아서 자기 몸값을 치릅니다. 그 때부터 노예는 자유하게 됩니다."
오네시모는 그 때로부터 50년 후 에베소 교회에 훌륭한 감독자였던 분이 있었는데 그에게 보내는 어떤 편지에서 발견된 그 감독자의 이름이 바로 오네시모였다고 합니다.
빌레몬은 바울의 기대와 같이 오네시모를 노예 신분에서 해방시켜 주었을 것이고 그를 양육하며 계속 지원하였으며 그가 훌륭한 일꾼이 되기까지 도와주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도들이 에베소 교회에 모여서 신약성경을 집필할 때 빌레몬서를 신약성경에 추가할 것을 요청했던 사람이 바로 에베소 교회의 일꾼이었던 오네시모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3 · 1 운동은 1919년 3월 1일에 일본의 식민 통치에 맞서 일어난 온 겨레의 항일 민족 독립 운동이다. 기미 독립 운동이라고도 한다. 일본 제국주의가 무력으로 우리나라 통치권을 빼앗고 식민지 정책을 펴 우리 민족이 온갖 굴욕과 고통을 받게 되자 온 민족이 들고 일어선 독립 운동이다. 어려울 때 태극기를 들고 온 몸을 던져 일본과 저항을 하였던 날입니다.
십자가형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천한 노예 한 사람이 사도 바울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그와 같은 훌륭한 교회의 일꾼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느 가정의 이야기입니다. 부인이 남편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잠들었습니다. 한밤중에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가보았더니 남편이 완전히 술에 만취되어서 돌아왔습니다. 거기다 혼자만 온 것이 아니고 술친구 한 명을 데리고 왔습니다. 자기 집에서 2차를 해야 되겠다고 친구를 같이 데리고 온 것입니다. 얼마나 속상한 일입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인은 군말 없이 주방에 가서 술상을 차려 대접했습니다. 친구는 그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자기 집 같으면 자기 아내가 난리가 났을텐데 이 집 부인은 전혀 그런 기색이 없었습니다. 아주 평안한 모습으로 정성을 다해 술상을 대접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정색을 하고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우리 집 사람 같으면 벌써 사네 못사네 하며 난리가 났을텐데 어떻게 아주머니는 싫은 내색도 전혀 없이 이렇게 대접을 잘해 주십니까?”
그 부인은 그저 웃기만 하고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는 또 졸랐습니다.
“말씀 좀 해 주세요! 그래야 우리 집 사람도 알고 배울 것 아닙니까?”
남편도 옆에서 어서 알려주라고 거들었습니다. 그제야 부인은 마지못해서 입을 열었습니다.
“사실 남편과 제가 결혼 한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10년 동안 남편에게 교회에 다니며 예수님을 믿자고 졸라대었는데 남편은 아직까지 한 번도 교회에 가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니까 앞으로도 교회에 가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요. 저는 믿으니까 죽으면 천당가지 않겠습니까? 이까짓 고생이야 좀 하면 어떻습니까? 그러나 남편은 믿지 않으니까 죽으면 지옥에 갈 것 아닙니까? 그러니 살아있는 동안이라도 대접 좀 잘 받으라고 제가 정성을 다해서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두 사람이 술맛이 나겠습니까? 술맛이 싹 달아나 버렸습니다. 결국 그 두 사람도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억지로 한다고 강요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감동시켜야 합니다. 사랑은 덕을 세우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을 먼저 배려하는 것이 바로 참된 사랑입니다. 하나님이 바울의 마음속에 주신 사랑을 우리에게도 주시기를 바라며 우리도 기꺼이 사랑을 인하여 낮아지고 “이러므로”를 “도리어”로 바꿀 수 있고, “명할 수 있으나”를 “간구하노니”로 바꿀 수 있고 예수생명으로 우리의 삶이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는 귀한 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