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미래신문) 나는 장학생이었다. 어릴 적 집이 너무도 가난해서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경상북도 도지사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었다. 또 중·고등학교 때는 성적 장학금으로 학업을 마쳤었다. 그리고 52년 전 네덜란드로 유학을 갈 때는 그 학교에서 주는 저개발국의 어려운 학생에게 주는 9개월짜리 장학금을 받고 떠났다. 비행기 표가 없어서 홀트 양자회에서 고아들을 데려가는 에스코트로 9만 5천원 짜리 비행기 티켓을 사서 유학의 길에 올랐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나 유학 생활에 익숙해질 무렵 학교 당국에서는 내게 “언제 귀국할 것이냐?”라고 물었다. 나는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학교 당국에서는 “우리는 장학기금이 그것밖에 없으니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다시 묻기를 “내 스스로 장학금을 마련하면 박사과정에서 공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대학교 당국에서는 내가 박사과정에 필요한 재정적인 지원을 확보할 수 없는 줄 알고 “만약 당신에게 누가 장학금을 준다면야 박사과정에서 공부할 할 수 있다”고 했다.
나는 처자식을 남의 집 문간방에 두고, 만리타향(萬里他鄕) 지구 반대쪽 나라에 와서 누군가로부터 장학금을 받지 않으면 말 그대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야 했다. 또 돌아오려고 해도 돌아올 비행기 표도 없을 뿐 아니라 만리타향 먼 나라에 남편을 보냈던 아내가 실망할 것을 생각하면 밤잠을 못 이루었다. 그래서 그때 나는 무조건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도서관 휴게실에서 나의 딱한 사정을 그곳 학생과 대화하는 중에 계단 2층에서 누군가 큰 소리로 “게 누구요?”라고 말했다. 알고 보니 신학교 졸업반 ‘얀 바우마’라는 학생이었다. 내 사정을 다 들은 그는 화란 자유개혁파교회 원로 목사님이신 메이스터(Jan Meester) 목사님을 소개해 주었다. 메이스터 목사님은 기독신문의 편집인이자 국제맨이었고,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봔틸 박사와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 사이였다.
나는 그에게 “한국에 있을 때 나의 스승은 칼빈주의 성경 주석가 박윤선 박사이고, 박윤선 박사는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코넬리우스 봔틸(Cornelius Van Til) 박사의 제자입니다”라고 말씀드렸다. 나의 말을 경청하던 메이스터 목사는 갑자기 껄껄 웃으면서 “그만하면 됐습니다. 봔틸 박사의 제자의 제자라면 틀림없습니다. 우리가 당신이 뿌라야 대학교 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모든 재정적인 지원을 하겠습니다”라고 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한순간에 박사과정을 마칠 때까지 전액 장학금을 받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나는 내 생애의 중요한 고비에 교회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것이다. 그 후에 여기저기서 ‘정 목사는 왜 가족을 데려오지 않느냐!’고 여전도회에서 여론이 일어났다. 그래서 장학위원회 측은 말하기를 “가족을 돌보는 대는 재정이 더 필요하다”고 난색을 했더니, 여기저기서 말하기를 “우리가 헌금을 2배로 하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유학 1년 만에 아내와 두 아이를 네덜란드로 데려와서 안정되게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나는 평생 내게 장학금을 준 분들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여러 해 후에 내가 총신대 교수가 되고 총장이 되어 다시 네덜란드로 가서 내게 장학금을 주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했었다. 그랬더니 그분들은 “당신이 성공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성공했습니다!”라고 했다.
장학금의 종류에도 참 많다. 국비 장학생, 대학의 장학금, 교회 장학금, 지방자치단체 장학금, 기업에서 주는 장학금, 기념 장학금 등등... 수도 없이 많은 장학제도가 있다. 장학금에는 아무 조건 없는 장학금도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공부를 마치고 일정 기간 장학금을 지원한 기관에서 봉사하는 일도 있다. 최근에 보도에 의하면 한국의 정치권이나 사법계에 <김일성 장학생>들이 많이 있었다는 뉴스다. 일찍이 김일성의 교시로 고시촌에서 공부하는 고시생들에게 장학금을 주어서 사법고시에 합격하면 대한민국을 무너뜨리는 사상운동에 선봉장이 될 수 있다는 꿈을 가졌다고 한다. 그들은 김일성 장학금을 받고 성공한 사람들이 언론계에 들어가서 여론몰이를 하고, 정치권에 들어가서 국회의원 뺏지를 달고 의정활동을 하고, 행정부의 요직에 앉아서 국정 논단을 해 왔다. 특히 판사, 변호사들이 종북세력에 유리하도록 판결하거나, 법복을 입고서 사상범과 종북세력을 엄호하고 보호하는 일에 앞장서서 일하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김일성 장학금을 받고 정치계, 언론계, 법조계, 행정계 등에 들어가 활약하는 사람이 수천 명이라는 말을 들었다. 지금 이 땅에 글깨나 쓰고, 말깨나 하는 사람들이 붉게 물든 지성인들로 꽉 차 있다. 그러니 지성인이라고 자부하는 대학교수들도 어디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했는지 조사해야 할 듯하다. 물론 김일성 장학금을 모르고 받았다 해도, 그것이 올가미가 되고 덫이 되어 북을 찬양하는 일에 앞장서거나 동조하게 된다. 한국에 김일성 장학금을 받은 자들이 1,800여 명이나 된다는 소문이 있는데 정확히 누가 몇 명이 받았는지 밝히면 한국의 앞날을 예견할 수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사상 전쟁> 곧 <이념 전쟁> 중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