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미래신문)
<Ad Fontes>라는 말은, <본질로 돌아가자> 또는 <근원으로 돌아가자>는 뜻을 가진 라틴어다. 이 말은 종교개혁을 전후로 유럽 사회의 핵심적 단어였다. 중세 1000년 동안은 말 그대로 암흑기였다. 그럼에도 교황제도로 교황을 하나님처럼, 신부들을 중재자로 모셨다. 한마디로 그들은 특권계급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교회나 정치, 사회가 얼마나 부패하고 어두운 줄 몰랐다. 밤이 깊으면 별빛은 더욱 찬란하다 했던가? 이렇게 좌우를 분간 할 수 없는 캄캄한 흑암 가운데도 한 줄기 빛이 있었다. 당시는 중세의 교황권이 국가와 사회 모든 것을 장악했고, 거기에 순응하는 자는 살아남고, 교권을 반대하면 처참한 죽음이 있을 뿐이었다. 교황권에 문제를 제기하면 종교재판에 따라, 사람 목숨은 파리 목숨처럼 처리되었다. 그것도 오늘의 사람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고문 기구를 발명하여 수천만 명의 사람을 죽였는데, 당시는 그것이 바로 법이고 정의였다.

이러한 때에 개혁의 꿈을 가진 자들이 <Ad Fontes>를 외쳤다. 영국의 위클립(J. W-ycliffe)은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그 때문에 그는 온갖 핍박을 받고 죽어 수십 년 만에 그의 무덤을 파헤쳐 부관 참시 된 끔찍한 일이 있었다. 이는 성경을 번역하는 자는 그 결말이 이렇게 된다는 것을 선포한 셈이다.
그리고 틴달(W. Tyndale)은 화란으로 도피해 성경을 번역 출판해서, 성경책을 우유 통 밑에 감추어 영국으로 가다 사전에 정보가 새어 나가 그의 성경은 모두 불태워지고 결국 그도 화형을 당했다.
그런데 틴달의 성경 한 권이 어찌어찌 살아남아, 지금까지 영국 성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후일 킹 제임스 역의 80% 이상이 틴달의 성경 번역을 사용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또 체코의 프라하대학의 총장이었던 얀 후스(Jan Hus)는, 주일마다 <예루살렘> 이란 교회에서 설교 중에, <우리의 신앙과 생활의 유일한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다>라고 외쳤다.
오늘날 개혁교회의 강단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후스는 그 메시지 때문에 1415년 화형을 당했다. 그는 화형을 당하면서 불길이 서서히 몸으로 다가오자, 그는 옆에 있던 지스카 장군에게 “오늘 여기서 거위 한 마리가 타 죽지만 앞으로 100년 후에는 백조가 나올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주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런 사례를 말하려면 끝이 없다.
그렇게 로마 가톨릭은 복음으로 깨어나 <본질로 돌아가자!>라고 외친 자들을, 화형 시켰고, 사지를 찢어 죽였고, 눈을 뽑아 죽였다. 후일 종교개혁의 시동을 걸었던 에라스무스(Erasmus)는 당대 최고의 헬라의 학자였으나, 그도 <우신예찬(愚神禮讚)>이라는 저서를 써서 교황제도의 해악과 어두움을 폭로했다. 후스의 예언대로 정확히 1517년 마틴 루터(M. Luther)는 <95개조 항의문>을 비텐벍 교회 정문에 붙이고 종교개혁의 횃불을 올렸다. 20년 후 루터의 종교개혁을 가장 논리적으로, 체계적으로 완성한 것은 요한 칼빈(J. Calvin)이었다. 그는 1536년에 <기독교 강요>를 출판했으니, 그의 나이 고작 27세였다. 그것이 오늘 개혁교회의 교리적 체계를 잡았다.
다시 Ad Fontes로 돌아가 보자. 이 말이 나오기 전에 독일에는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발견되어, 성경을 독일어로 찍어 냈을 뿐 아니라, 여러 개혁주의 노선의 책들이 출판되기 시작했다. <본질로 돌아가자>라는 단어가 교회를 개혁하고 세상을 바꿀 원동력이 되었다.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대로 본질로 돌아가야 했다. 이를 가르쳐 종교개혁 곧 Reformation이라 한다. 이것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이다. 그런데 당시는 똑같은 Ad Fontes를 사용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본질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헬라와 로마의 찬란한 문화를 다시 꽃 피우자는 걸로 이해했다. 이것을 가리켜 이른바 르네상스(Renaissance) 운동이라고 한다. 우리말로 굳이 번역한다면, 인문주의(人文主義)라고 할 수 있다. 좀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인간이 인간을 위한 인간의 문화를 노래하고 찬양하는, 이른바 휴머니즘(Humanism)으로 발전한다. 다른 말로 하면 인간중심주의, 곧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요, 인간의 꿈과 이상은 인간의 마음 먹기에 따라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본주의(人本主義) 사상이다. 그러므로 인본주의는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Ad Fontes는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하나는 Reformation이고, 다른 하나는 르네상스(Renaissance)였다. 즉 인본주의(Humanism)으로 갈라진다. 오늘날은 유럽과 미국 등 세계 모든 나라에 휴머니즘은 종교가 되었다. 휴머니즘은 1968년 미국 대법원 판례에서 이는 하나의 종교로 구분되었다. 그러니 따지고 보면 공산주의도 인본주의에서 나온 것이고, 오늘의 모든 거짓된 사상체계는 인본주의의 아들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안타까운 것은 한국의 정치도 본질로 돌아가야 하는데, 점점 공산화되어 가고, 기독교도 점차 인본주의 종교로 흘러가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교회도 본질에서 벗어나 “개혁교회는 끊임없이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는 종교 개혁자들의 정신에서 한참 멀어져 가고 있다. 그리고 강단의 메시지가 점점 인본주의화 되고 있다.
복음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고,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이다. Ad Fontes! 본질로 돌아가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