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전 ‘의사 요한’이라는 이라는 드라마가 있었습니다. 작은 자극에도 고통을 느끼는 CRPS 환자가 의사 차요한 에게 이렇게 외칩니다. “살려주세요. 아님 죽여 주던가요?”
이 병은 복합 부의 통증 증후군이라고 하는데 외상 후 특정 부의 특히 팔이나 다리에 주로 발생한다고 합니다. 이 병에 걸리면 조그만 자극에도 수백 배의 고통이 가해져서 차라리 죽고 싶을 정도의 고통을 느낀다고 합니다. 우리 교회에 이태윤 청년이 왼쪽 팔에 이 병을 앓고 있는데 팔이 스치지 않도록 조심해 주시고 기도 많이 해 주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드라마의 주인공 의사 차요한은 선천적 무통각증 및 무한증(CIPA)이란 희귀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연인에게 아픔을 이렇게 토로합니다. “뼈가 부러지고 내부 장기가 터져도 통증을 느낄수 없는 몸, 뜨거운 불에 손이 달구어 져도 못 느끼고 추운 겨울의 찬바람도 느낄 수 없는 몸, 내 몸 안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달고 살아가고 있다” 이 병에 걸린 채 태어난 아이들은 3살을 못 넘기고 사망에 이르고 살아난 사람도 25세를 넘기는 경우가 드물다고 합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이 자체 병으로 죽는 것은 아니지만 이 병으로 인해 발생 되는 합병증으로 사망한다는 것입니다.
통증을 느끼는 감각인 통각은 사람들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입니다. 통증은 위험을 알아차릴 수 있는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배가 아프면 얼른 소화제를 먹고, 열이 나면 얼른 내과에 가서 검사를 받고 해열제를 먹습니다. 뜨거운 물건을 만지면 얼른 손을 떼고 화상을 방지합니다. 통증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입니다.
우리의 영적 삶에 있어서도 통증을 느낄 수 없다면 이는 심각한 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하고, 예배를 드리지 않는데도 짜증이 나지 않고, 헌신을 하지 않는데도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면 영적인 무통각증을 앓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이는 삶 속에서 이유도 알 수 없는 엄청난 복합주의 통증을 앓고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오늘은 성경에서 가장 큰 고통을 맛보고 살았던 욥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그가 느끼는 삶의 고통과 그 속에서 그는 어떤 삶을 살아갔는지 살펴보며 은혜받는 복된 시간 되시길 축원합니다.
1.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라
욥은 지금 엄청난 고통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괴로움을 달아 보며 나의 파멸을 저울 위에 모두 놓을 수 있다면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욥은 동방에 최고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루 아침에 그 많던 재산을 다 잃었습니다. 욥에겐 열명의 아들 딸들이 있었는데 하루 아침에 모두 집이 무너져 죽었습니다. 욥에겐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습니다. 그녀 마져 욥을 떠나갔습니다. 욥에겐 그래도 버틸 수 있는 몸이 있었는데 그마저 온몸이 썩어들어가는 병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내 살에는 구더기와 흙덩이가 의복처럼 입혀졌고 내 피부는 굳어졌다가 터지는구나” (욥7:5) 종들은 하루 종일 일을 하면서 쉴수 있는 저녁이 오기를 기다리고, 노동자들이나 품꾼들은 열심히 일을 하면서 품삯을 받을 시간이 오기를 소망합니다. 이 소망이 있기에 그나마 참고 일을 합니다.
그런데 욥에겐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눈이 다시는 행복을 보지 못하리이다” 그는 깊은 절망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불면증에 시달립니다. “내가 누을 때에 말하기를 언제나 일어날까, 언제나 밤이 갈까 하며 새벽까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하는구나” (욥7:4)
어쩌면 욥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고통을 맛보고 있습니다. 복합부의 통증 증후군 CRPS를 온 삶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믿었던 친구들에게조차 배신을 당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친구를 팔아 넘기는구나” (욥6:27) 인생의 환난과 고통이 너무나 복합적으로 그에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모든 것을 잊어 버리고 잠이라도 자면 그 순간 만큼은 고통을 잊을수 있을까 했지만 꿈에서도 고통을 당하여 두렵기만 하였습니다.(욥6:14) 그래서 욥은 이렇게 하나님께 요구합니다. “이러므로 내 마음이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니 차라리 숨이 막히는 것과 죽는 것을 택하리이다. 내가 생명을 싫어하고 영원히 살기를 원하지 아니하오니 나를 놓으소서 내 날은 헛 것이니이다” (욥6:15,16) 여러분은 올 한해를 살아 오면서 어떤 고통을 겪으셨나요?
2. 나의 허물을 깨닫게 하라
밥을 잘 먹고 거실에 앉아 차를 마시며 TV를 보고 있는데 주방에서 설거지 소리가 요란하게 났습니다. 평소보다 손놀림이 좀 거칠고 접시가 부딪치는 소리가 좀 컸습니다. 아내가 속이 시끄럽고 좀 짜증이 나 있다는 표시였습니다. 아내는 오늘도 전도특공대를 나가 열심히 전도하고, 오후엔 시아버지 입원해 있는 병원에 찾아가 병 수발 들고 저녁에 파김치된 몸으로 돌아와 남편 저녁을 해 주었는데, 남편은 그것도 모르고 무심하게 앉아 있었던 것입니다. 수고했다고 말 한마디라도 건네고, 설거지는 내가 할 테니 당신은 차라도 한잔 마시라고 했으면 그 수고가 눈 녹듯이 사라질 텐데 남편은 그것도 몰라 주었던 것입니다.
통증이 있음으로 인해 인간이 육체적인 질병을 빨리 발견할 수 있는 것처럼, 짜증이 있음으로 인해 감정적, 정서적인 병을 빨리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짜증이 난다면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말고 짜증이 난다는 것은 지금 무언가가 꼭 필요한데 그것이 충족되지 못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밝혀지고 충족되면 짜증은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지고 삶에 활력이 되는 것입니다.
욥은 친구들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욥6:24) “들 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욥6:5,6) 그리고 하나님께 이렇게 절규하며 기도합니다. “나의 죄악이 얼마나 많으니이까 나의 허물과 죄를 내게 알게 하옵소서”(욥13:4) 분명 나의 고통 뒤에는 숨겨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나의 허물과 죄라면 회개할 것이요. 다른 이유가 있다면 그대로 받아 들이고 순종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욥은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허물에 비해 인생에 당하는 고통이 너무 크고 힘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다 말하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그렇다고 정죄하지는 마시고 다만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다시 말해 이런 고통을 통하여 나와 대화하시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주세요 라고 거듭 간구 합니다.(욥10:1,2) 그리고 결론에 가서 그는 이런 고백을 드립니다. “그러나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오리라”(욥23:10) 내가 이렇게 고통당하는 원인은 다 알 수 없고, 내 죄가 무엇인지 다 알 수 없으나, 확실한 것은 하나님이 내 인생에 개입해 있다는 것과 반드시 내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내 인생에 당하는 고통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뜻을 우리가 어찌 다 알 수 있겠습니까? 나의 무슨 죄 때문에 이런 고통을 당하는가 딱 부러지게 알 수 있지도 않습니다. 욥의 고백처럼 내가 앞으로 가도 뒤로 가도 왼쪽으로 가고 오른 쪽을 보아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 인생을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반드시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손길은 미래를 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 이냐고 불평하지 마세요 고난의 뒤편에 있는 주님의 주실 축복 미리 보면서 감사하세요
너무 견디기 힘든 지금 이 순간에도 주님이 일하고 계시잖아요 남들은 지쳐 앉아 있을 지라도 당신만은 일어 서세요
힘을 내세요 힘을 내세요 주님이 손 잡고 계시잖아요 주님이 나와 함께 함을 믿는 다면 이떤 역경도 이길 수 있잖아요”
3. 나의 위로와 기쁨은
욥은 자기에게 죽음이 다가온다면 자기는 오히려 위로를 받을 것이며, 자기는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10) 욥은 자신은 죽더라도 하나님 앞에 기뻐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고통이 연속되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욥의 소망은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다가 크게 부흥할 수도 있고, 지금처럼 너무나 처참하게 망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온 몸에 병이 들어 죽음이 코앞에 닥쳐왔습니다. 그런 그에게 찾아오는 마음의 평안과 기쁨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왔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누구의 말도, 그 어떤 무엇도 위로가 되지 않지만 지금 죽음의 목전에서 그에게 찾아오는 평안과 위로는 지난 생애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극심한 고통의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이 그의 위로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고난당 할 때 마음이 상하고 피곤해서 말씀을 놓치고 원망과 불평 가운데 있을 때가 많습니다. 고난 가운데서도 욥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음으로 기쁨과 위로를 삼는 자야말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해를 마감하면서 과연 나는 올 한해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아 왔는지 다시 한번 돌아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나의 소망과 위로와 기쁨은 무엇인지 분명히 붙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삶의 고통속에서도 참된 위로를 얻으며 내일의 소망이 싹터 오를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