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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목사 칼럼>『 말의 무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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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미래신문)

 

말에도 무게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의 말은 깃털보다 가볍고, 어떤 사람의 말은 태산보다 무겁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의 말을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도 바꾸는가 하면, 어떤 이는 자신의 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립니다.

 

성경을 보면 베드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자 선생님을 말리면서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주를 버리지 않겠나이다.”(마 26:33) 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네가 오늘 이 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막 14:30)고 말씀합니다. 이번에는 베드로가 더 강력하게 부인합니다. “베드로가 힘 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14:31).

 

그런데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베드로는 그날 밤 정확하게도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심지어 저주까지 합니다.

그래도 우리는 베드로를 이해합니다. 죽음의 두려움 앞에 선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고, 나중 회개하고 결국은 주님을 위한 사역에 매진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는 진정한 모습을 보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 사회를 보면 말의 무게감이 점점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범인이야 그럴 수도 있지, 각박한 세상 살려니 어쩌겠어.”라고 동정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이해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대상이 범인이 아니라 공인이면, 그것도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로 나온 사람들이라면 그 말의 무게에 대한 평가는 달라 질 수 밖에 없습니다. 대통령 후보의 공약이 조석변이로 바뀐다면 어떻게 그를 신뢰 할 수 있고, 국가의 운명을 맡길 수 있을까요?

 

말을 잘 하는 것과 말에 신뢰가 가는 것은 다릅니다. 학교에 다닐 때 보면 어떤 교수님은 학문적 깊이보다 정말 말을 잘하는 교수님이 있었는가 하면 어떤 교수님은 정말 대단한 지식과 학문적 깊이를 소유했음에도 말에 어눌한 이도 있었습니다.

 

장부일언 중천금(丈夫一言 重千金)이라 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 했습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공약도 믿지를 못합니다.

당선되기 위해서라면 무슨 말은 못할까라는 식으로 국민을 속이고 당선되려 하는 사람을 골라내는 것은 이제 우리 국민의 몫이 되었습니다.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사람에게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구의 말이 진정성 있는 말인지를 가려 낼 수 있는 안목쯤은 길러야 하지 않겠습니까?

말의 무게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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