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수)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인물 / 동정

현암 정성구 박사, 11월8일(월)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과 삶」 <독일어판><불어판>번역 출판 감사예배

URL복사

-"지금 한국 교회가 <물량주의>와 <인본주의>로 이전보다 빛을 잃어가고 있다"

 

(시사미래신문) 

 일찍이 선교신학자 요한네스 벌까일(Jogannes Verkuyl)박사는 말하기를 아세아의 신학이란 하나의 <번역신학> 또는 <화분갈이 신학>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즉 지금가지 한국의 신학은 서구의 학자들의 이론을 번역해서 소개하는 것이 전부였다. 또 미국 역시 대륙의 철학과 신학을 영어로 번역하는 수준이었다.

 

 현암 정성구 박사는 50년 전에 화란으로 건너가 칼빈과 칼빈주의 사상을 배웠다. 특히 그는 1985년에 『한국 교회 설교사』를 썼고, 이 책은 영어, 일본어, 중국어, 대만어, 러시아, 루마니아, 체코, 헝가리, 포르투갈, 벵골어 등 10여 개국으로 번역된 바 있다. 그는 총신대와 대신대의 총장으로, 교수로 재직하면서 1985년에 <한국 칼빈주의 연구원(The Institute for Calvinistic Studies in Korea)>과 <칼빈 박물관>을 세워 국내외에서 활동하던 중, 특히 11년 전에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의 사상과 삶>을 연구해서 출판한 바 있다.

 

그러던 중 금번에 독일에서 40년간 신학 연구와 선교에 열중하던 Kwon Lukas목사는 독일어로 정성구 박사의 책을 3년에 걸쳐서 번역하여 출판하게 되었다. 또한 블란서 파리에서 목회하는 Choi Marc(최 마가)박사도 블란서에서 30년 이상 살면서 파리 북쪽에 칼빈 휴양관 La Calvinum을 세우면서 칼빈주의 사상에 심취하던 중, 지난 3년에 걸쳐서 정 박사의 책을 불어로 번역을 완성하여 책을 출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 한국신학자가 화란의 위대한 <칼빈주의 신학자>요, <정치가>요, <교회 개혁자>이자 <언론인>이었던 아브라함 카이퍼에 대한 책이 어떻게 독일어와 불어로 번역되었을까? 하는 것이다.

 

이유는 정성구 박사의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과 삶>에는 서양학자들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들이 여섯 가지 정도가 있었다. 즉

 

첫째, 정성구 박사는 그의 책에서 칼빈과 카이퍼의 연속성을 취급했었다. 19세기 카이퍼는 16세기 요한 칼빈의 사상을 부흥시키고, 더 광범위하게 칼빈주의 신학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했음을 지적한 점이다.

 

둘재, 그의 책은 서양학자들이 간과했던 <아브라함 카이퍼의 성령론>을 밝히 제시했다. 칼빈이 성령의 신학자였듯이, 아브라함 카이퍼도 위대한 <성령의 신학자>라는 것을 증명했다. 카이퍼의 성령론은 인간의 영적인 변화만 아니고, 창조, 중생, 보존, 섭리 등 삶의 모든 영역에 성령의 역사와 간섭을 분명하게 표현했다.

 

셋째, 정성구 박사는 서양학자들이 간과했던 아브라함 카이퍼의 <설교론>과 <목회론>을 심도있게 다루었다. 설교는 신학의 꽃이요 열매이다. 칼빈도, 카이퍼도 교의학뿐 아니고 오히려 실천신학의 대부였음을 밝혔다.

 

넷째, 서양학자들에게 아브라함 카이퍼하면 대부분 <일반은총론>이 전부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정성구 박사는 오히려 카이퍼의 <특별은총론> 즉,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은총의 교리를 더 깊게 다루었다. 또한 <일반은총>은 <특별은총>을 기반으로 나온 것임을 밝혔다

 

다섯째, 서양학자들이 간과한 <카이퍼의 경건론>을 다루면서 칼빈과 비교하고 있다. 카이퍼의 경건론은 칼빈의 경건론보다 오히려 적극적이고 진취적이었음을 주장했다.

 

여섯째, 정성구 박사는 그의 책에서 서양학자들이 미처 생각지 못했던 <카이퍼의 선교론>을 처음으로 다루었다. 카이퍼는 근대 선교의 출발지인 에딘버러(1910) 전에, 이미 1871년에 선교정책을 정리했다. 특히 1896년의 카이퍼의 메시지는 「개혁주의 선교위 대헌장」이라고 했다(Rullman). 그는 선교가 <교회 중심>이어야 하는 원칙을 발표하므로, 카이퍼의 선교에 대한 해석이 세속화된 유럽 신학계와 교회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고 보았다.

 

한국신학자의 책이 독일과 블란서에서 번역된 것 그 자체만으로도 크나큰 의의가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한국 교회의 신학이 서양 신학의 번역수준의 화분 갈이 신학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자유주의와 세속주의로 무너지고 있는 서구교회를 위해 발언을 행사하고 대화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한국 교회에 뿌리내린 역사적 칼빈주의 신학과 한국 교회 성장의 배후에 <하나님의 주권>이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록 지금 한국 교회가 <물량주의>와 <인본주의>로 이전보다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맞지만, 선교 한국으로서 전 세계에 선교사를 가장 많이 보낸 나라임은 틀림없다. 특히, 국제무대에 나가보면 그래도 국제행사들이 한국 교회의 지원과 협력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면에서 한국 교회의 발언이 세계교회에 선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본다.

 

 

<한국 칼빈주의 연구원 제공>

 

 

 

 

 

 

 

배너
배너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