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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박사 칼럼>빌라도의 법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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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미래신문)

 

예수 그리스도는 민란을 일으켰다는 죄목으로 빌라도 법정에 섰다. 본디오 빌라도는 로마 제국 유대 속국의 다섯 번째 총독이다. 빌라도는 A.D26~36년경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 때 파송 받아서 유대와 사마리아, 이두메를 다스렸다. 당시 유대 총독은 유대인들의 사형 집행권과 지방 법원(산헤드린 공회)의 결정까지 뒤집을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을 가졌다. 그뿐 아니라, 군사, 사법, 종교를 두루 관장하는 초법적 힘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으로 치면 입법, 사법, 행정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절대 강자였다. 빌라도의 로마군 지휘부는 주로 본부인 가이사랴에 머물렀고, 유월절 등 특별한 행사에만 예루살렘에 주둔하면서 군병력을 장악하고 강화했었다. 빌라도는 행정관이자 재판관이요 병력을 움직일 수 있는 절대 권력자였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말이 있듯이, 빌라도는 뇌물을 좋아하고 공평치 못한 불법재판을 일삼았고, 근거가 없는 사람에게 중형을 때리는 자로 유명했다.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Josephus)의 기록을 보면, 빌라도는 부임 직후 황제의 흉상이 그려진 로마 군기를 앞세우고 예루살렘으로 진군하였으며, 이 사실을 5일간 밤낮으로 저지하는 유대인들에게 창검을 겨누고 학살을 명령하는 등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시민들의 항전에 밀려 일시 퇴각하기도 했다. 또한 빌라도는 예루살렘의 식수난 해결을 위해 수도 공사에 성 전체를 유용하고 이에 항거하는 유대인들을 몽둥이로 때려 수많은 시민을 살상케 했다. 그리고 A.D35 년에는 가짜 뉴스가 있었다. 그것은 모세가 그리심산에 성물을 묻어두었다는 말에 현혹된 사마리아 사람들이 무장하고 그리심산으로 모여들자 <반란>으로 오해하여 군사를 동원하여 무자비하게 진압했다.

 

빌라도는 재판장으로서 무죄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데모대의 발작에 현혹되어 불법재판을 하고, 민중에게 인기를 끌고자 민중의 손을 들어주고 자기는 스스로 ‘이 일에 무관하다’고 대야에 손을 씻었다. 그는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군중들이 일제히 “예수를 무죄 석방하면 황제의 충신이 아니다!”라고 고함을 지르자, 그는 불의한 자들의 고함소리에 재판을 뒤집어버렸다. 당시는 유월절에 죄수 한 명을 석방하는 제도가 있었다. 빌라도는 그 법의 테두리 안에서 예수를 석방하려 했으나, 군중들은 악의에 찬 괴성으로 <바라바!> <바라바!>를 외쳤다. 이에 굴복한 빌라도는 살인, 강도로 잡혀 온 중죄인은 석방하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도록 허락했다. 그러나 빌라도 재판은 엄연히 거짓이요, 불법이었다. 그래서 2000년 동안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사도 신경을 고백할 때마다, 예수님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고 암송하고 있다.

 

사실 이 사건은 빌라도만의 잘못으로 된 것이 아니고, 그를 둘러싼 모든 정치적 지형이 있었다. 우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예수는 걸림돌이었다. 그들은 자칭 율법주의자들이었으나 형식에 불과했고, 재물과 명예와 현재의 직책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했었다. 그러니 그들은 겉으로는 종교인이라는 탈을 쓰고 있었지만, 백성들의 억울함과 아픔을 외면하고, 율법을 문자적으로 자기들 유리한 데로 해석하는데 올인했었다. 그래서 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들은 이른바 정통을 지킨다는 명분으로 실재적으로 백성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짓들을 하고 있었다.

 

그때도 여러 정당이 있었다. 사독 계열의 사두개파도 있었고, 열심 당도 있었다. 쟁파가 있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기득권과 이권 지키기에만 몰두할 뿐이었다. 그래서 이들의 외식 적인 모습에 지친 백성들은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에게 몰려왔고, 그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산상설교에 사람들이 구름 때처럼 몰려왔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 한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등 산상 보훈 중에 팔 복을 말씀하셨다. 이는 당시 민초들의 서러움에서도 영적으로 받는 복이 먼저 임을 말했다. 당시 백성들은 목마르고, 배고프고, 로마의 압제에 고통당하고 있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천국 복음의 메시지는 민초들에게 단비와 같은 희망의 소식이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구주로 세상에 와서 3년 동안 사역을 했다. 그중에 5000명에게, 또는 7000명에게 일시에 빵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하지만 예수님이 빌라도 법정에 억울하게 섰을 때, 아무도 그 자리에 와서 변론하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겉옷을 벗어서 카페트를 만들어 주면서 <호산나>하고 뜨겁게 큰소리로 찬양하던 무리들도 빌라도 법정에는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뿐 아니다. 예수님과 3년 동안 침식을 같이하며 함께 했던 가장 가까운 동지였던 제자들도 빌라도 법정에는 없었고, 멀찍이 빌라도의 재판을 귀동냥하고만 있었고, 정작 현장에는 없었다. 가롯 유다의 배신은 그렇더라도 수제자였던 베드로는 말고의 귀를 자르는 객기를 부리기까지 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사용하는 자는 칼로 망한다!>라고 하시면서, 피 흘리고 있는 말고의 귀를 고쳐주셨다.

 

베드로는 사내답지 않게 어린 계집종에게 한 번도 아닌 3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다. 베드로는 예수를 모른다고 잡아떼면서 자신의 스승을 저주까지 하면서 혼자 살려고 발버둥을 쳤던 것이다. 제자들의 행색이 참으로 치사하고 아니꼽다. 그때나 지금이나, 종교인이나 법조인이나, 군인이나 인간은 모두가 한 통 속이다.

평화 시에는 누구나 말하지만, 환난 때는 고요가 답이던가!

 

 돌들이 소리 지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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