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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 / 경찰

미 해군 장교 쇼 대위는 미국인 선교사의 아들, “한국을 위해 목숨 바친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를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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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현성 해군협회 회장(전 해군 참모총장), 추모사에서 “쇼 대위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
"쇼 대위의 희생과 헌신을 대한민국은 기억할 수 있어야 한다"

- 쇼 대위 6ㆍ25전쟁 발발하자 한국 위해 미 해군 재입대, 서울탈환작전에서 전사

- 22일, 고인 동상 서 있는 서울 은평구 평화공원서 해군협회 주관으로 72주기 추모행사 거행

- 해군, 대표장성과 장병 참석, 해군참모총장 명의 추모화환 비치해 고인의 뜻 기려

(시사미래신문)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했던 미국인’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대위의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추모행사가 9월 22일 고인의 동상이 있는 서울 은평구 평화공원에서 개최되었다.

 

 

해군협회 주관으로 거행된 이번 행사에는 엄현성 해군협회 회장(전 해군참모총장) 등 협회 관계관과 보훈 관계관, 은평구 관계관, 역해 해군참모총장, 해군 예비역 단체 관계관, 일반 시민 등이 참가했으며, 경과보고, 추모사, 축도, 헌화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해군은 대표장성 및 장병 참가와 해군참모총장 명의의 추모화환을 비치해 쇼 대위의 한국에 대한 희생과 헌신을 기렸다.

 

 

쇼 대위는 미국인 선교사 부부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났으며, 1943년 미 해군장교로 입대해 2차 대전에 참전 후 전역한 뒤 2년간 한국 해군사관학교 교관으로 생도들을 가르쳤다. 이후 미국 하버드대에서 박사과정 중 쇼 대위는 6·25전쟁 발발 소식을 듣고 자발적으로 미 해군에 재입대하여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했으며, 1950년 9월 22일 서울탈환작전 중 서울 은평구 녹번리 전투에서 북한군의 공격을 받아 28세의 나이로 전사했다.

그의 한국 사랑은 그가 부모님께 보낸 편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지금 한국 국민이 전쟁 속에서 고통당하고 있는데 이를 먼저 돕지 않고 전쟁이 끝난 후 평화 시에 선교사로 한국에 간다는 것은 제 양심이 도저히 허락하지 않습니다.”라고 부모님께 편지를 보내고 미 해군에 재입대 해 6ㆍ25전쟁에 참전했다.

 

 

추모행사를 진행한 엄현성 해군협회 회장은 추모사에서 “쇼 대위는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미국인으로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아있다”며, “오늘날 대한민국이 세계 10대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이었던 것은 그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많은 이들이 쇼 대위를 비롯한 호국영령들의 헌신을 기억할 수 있도록 추모행사에 그치지 않고 다양한 선양사업을 펼쳐 나가겠다”라고 말했다.

 

해밀턴 쇼 대위는 1956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금성 충무무공훈장을 미국 정부로부터 은성훈장을 추서 받았다. 1956년 그가 전사한 자리에 추모비가 세워졌으며, 해군과 은평구 관계관이 뜻을 모아 2010년 은평구 평화공원에 동상을 건립했다.

해군협회는 매년 추모행사를 개최해 오고 있으며, 지난 2년간은 ‘코로나19’로 행사를 축소해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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