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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갈5:16-26) 2019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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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일과 성령의 열매(갈5:16-26)

 

 

한 해 동안의 성적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로 내 마음의 바구니에 담아서 내어 드려야 하는 연말 주일입니다. 감사하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신지요?

 

이스라엘이 애굽을 빠져나오는 데는 며칠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군사로 변화되는 데는 무려 사십년이 걸렸습니다. 죄악에 물든 마음이 깨어지고 부서지고 변화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겁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고 성령의 체험을 하고서도 이 불순종의 병은 쉽게 치료되지 않습니다. 홍해를 건넌 지 불과 사흘밖에 되지 않았을 때 마라에서 물이 없다고 모세에게 원망하였고, 광야에 나온 지 두 달 반이 되어 양식이 떨어졌을 때 종살이 하던 애굽을 그리워하며 불평하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성령님과 보조를 맞추어 나아가며 주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요? 본문을 중심으로 성령을 좇아 살면서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며 주님 보시기에 합당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인간에게는 두 소욕이 있습니다(16-18절) 

 

예수를 믿어 의롭다 함을 입었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완전하게 변하여 거룩하게 되었다는 말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인하여 우리를 의롭다 인정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다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옛 사람의 죄악 된 습성이 남아 있기에 이것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 습성이 자꾸 고개를 들기 마련입니다. 

 

육체의 소욕은 자기중심으로 살려고 하고 죄악 된 습성에 머물려는 강한 욕구를 말합니다. 그런데 성도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 성령을 통하여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하나님과 기도로 교제하게 되고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갑니다. 성령의 소욕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는 거룩한 의지를 말합니다. 성도의 내면에 공존하는 두 성품, 즉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은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우리의 심령 상태에 따라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엎치락뒤치락 하다가 강한 쪽이 약한 쪽을 장악해 버립니다. 

 

바울은 롬 7:15에서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고 말합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좇으려 하면서도 육신은 이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두 소욕의 갈등이 계속되는 한 성도는 결코 자유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바울은 자신 안에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음을 보고 괴로워합니다. 한 편에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다른 편에서는 죄의 법에 굴복해버리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한 사람 안에 두 마음, 이는 바울만의 고민은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고민입니다. 

 

로마서 7장에서 드러난 바울의 고민이 갈라디아서 5장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됩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5:17)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육체의 소욕”으로 표현되고,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은 “성령의 소욕”으로 표현됩니다. 예수를 믿을 지라도 우리 안에는 지금까지 살아 온 방식을 바꾸기 싫어하는 강한 고집이 있어서 성령께서 주시는 감동을 소멸시키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단순히 죄가 옳지 않다는 생각만으로 죄가 청산되지 않습니다. 더러운 짓을 해가면서 자기 욕심을 채우려는 자신의 옛 기질에 대하여 혐오감이 생겨야 합니다. 전에는 죄가 당연한 줄 알았고, 누군가 죄를 지으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였는데 이제는 죄가 얼마나 추악하고 더러운 것인지 깨닫게 하십니다. . 육체와 성령의 싸움 속에서 육체가 이기면 육체의 일이 만들어지고, 성령이 이기면 성령의 열매가 맺혀지게 되는 것입니다. 

 

 

2. 육체의 일이 현저하게 드러나기도 합니다(19-21)

 

여기서 육체란 ‘죄 된 본성’을 뜻합니다. 그리고 ‘일’이란 ‘인위적인 것’, 즉 하나님께서 능력을 부여해주지 않은 것들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육체의 일’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부여받지 못한 죄 된 본성이 추구하며 행하는 모든 것을 가리킵니다. 음행, 호색, 술 취함, 방탕함 등을 말할 때 우리 안의 양심이 이를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것을 느낍니다. 그럼에도 육체의 일들은 우리가 은근히 원하는 것들입니다. 육체가 추구하는 것들이 선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하지 않는 것들을 추구하는 모순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는 배치되는 열다섯 가지 육체의 일을 나열하는데, 분류해 보면 성적 범죄, 종교적 범죄,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의 범죄, 자신에 대한 범죄로 나뉩니다. 음행, 더러운 것, 호색은 성적 범죄에 속합니다. '음행'은 성적으로 부도덕한 행위를 가리키고 '더러움'은 불결한 남녀 관계들을 의미하고, '호색'은 방탕한 것을 즐기는 태도입니다. 바울은 육체의 일에 대한 목록을 쓰다가 너무 많아서 그 뒤에는 그냥 “그와 같은 것들”(갈 5:21 하)이라고 하며 언급하지 못한 죄목들이 많음을 암시합니다. 사실 죄의 종류들을 다 열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죄는 또 다른 죄를 계속해서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육체의 일들은 개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오늘 우리 사회가 겪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런 육체의 일들이 자주 나타나다 보니 이러한 죄에 대하여 점점 둔감해집니다. 이런 일들은 다 우리에게 얼마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들이기에 주의해야 합니다.“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하면서 바울이 경계합니다. 이 말은 한번 이런 죄에 빠진 적이 있는 사람은 다시 회개할 수도 없고 예수를 믿어도 소용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들도 때로는 실수하여 '육체의 일'을 따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을 상습적으로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죄를 계속 저지르는 것은 성령을 받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어떤 죄든지 다 용서 받을 수 있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바울의 취지는 성도들이 그런 악행을 버림으로 해서 그 마음속에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이루고 날마다 변화하여 끝내는 육체의 소욕을 모두 버리기까지 성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들도 육체를 지니기에 때로는 유혹을 받기고 하지만 그때마다 자신을 누르고 자제해야만 신앙의 성장을 이루며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됩니다. 

 

 

3. 성령의 열매를 맺기도 합니다(22-23).

 

우리의 신앙이 내적인 고백만으로는 부족하고, 행위를 통하여 나타나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산다는 것은 그들의 행위가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사랑을 비롯하여 아홉 가지 덕목을 열거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바로 그리스도의 품성입니다. 성령을 좇아 살 때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고, 그리스도를 닮은 '증거'들이 열매로 나타납니다. 

 

‘열매’라는 것은 자연스럽게 맺히게 됩니다. 농부라 할지라도 억지로 열매를 맺게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열매도 원한다고 해서 맺히는 것은 아니고 또한 맺히기 싫다고 해서 맺히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의 소욕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저절로 맺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에 바울은 “이에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5:23)고 했습니다. 성령의 열매는 우리가 맺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이 맺게 하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령이 하시는 일을 금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성령의 열매를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의 9가지로 말하고 있지만 이 성령의 열매는 복수가 아니라 단수로 제시됩니다. 이것은 성령의 열매로 제시된 속성들이 서로 연합되어 있으며 모두가 성령의 지배 아래 살아가는 성도에게서 발견되어야 할 것임을 말해줍니다. 즉 열매란 성도 자신의 소산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의 사역입니다.

 

 

4. 믿는 자는 십자가에 못 박고 성령을 좇아 살아야 합니다(224-26)

 

우리가 예수 믿기 전에는 세상에 속하였는데 이제는 소속의 변화가 일어나서 천국백성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 세상에 살지만 하늘나라 시민으로서의 소속감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러한 확신은 죄의 유혹으로부터 우리를 막아줍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있는 육체의 욕망을 억누르기란 쉽지 않습니다. 육체의 소욕은 성령의 열매 대신에 육체의 일을 하게 합니다. 

 

바울은 성도가 어떻게 해야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24).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번역된 헬라어 ‘에스타우로산’은 '계속 십자가에 달려 있다'는 뜻으로서 예수를 믿으면서 옛 성품이 단번에 죽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잠시 동안이나마 살아 있는 상태가 계속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정욕이 십자가에 못 박힌 채로 달려 있다는 말이고 그러나 더 이상 큰 위협은 못되고 한풀 꺾인 상태, 마치 사슬에 묶인 사자와 같이 소리는 지르고 위협할 수는 있지만 더 이상 우리를 해치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날 때에 아말렉 족속이 뒤에서 치곤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뒤에 처진 이스라엘만 치다가 나중에는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벌입니다. 이스라엘은 노예로 있던 애굽을 빠져나온 이후로 다른 족속과 싸워본 적이 없습니다. 그들이 볼 때 아말렉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세력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수아를 앞세워 싸우게 합니다. 산 위에서는 모세가 아론과 훌의 도움을 받아 손을 들고 기도합니다. 그 결과 아말렉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이 전쟁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진 생각이 무엇입니까? 아말렉이 강하기는 하지만 해볼만하다는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의 복음을 듣고 성령을 따라 살 때는 서로 화목하였는데 거짓 가르침을 받고 육체를 따라 살면서 공동체 안에 분란이 일어나고 허영에 들떠 서로 시기하고 싸웠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모르고 성령을 좇아 살지 않는 곳에는 항상 인간의 추악한 부분들이 들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교회의 평화를 깨뜨렸습니다. 헛된 영광을 구하는 것은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며 서로를 시기하게 합니다. 

 

헛된 영광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에 대해서 가져야 할 사랑과 모순되는 불화와 싸움의 근거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영적인 교만, 상대방을 자극시키는 것, 시기하는 것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3). 성도들은 헛된 영광을 버리고 성령을 따라 행할 것을 촉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누구와 보조를 맞추며 신앙생활 하고 있습니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좋은 나무와 나쁜 나무를 구별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마 7:18). 

 

겉으로 아무리 치장하고 아름답게 보이려고 해도 맺히는 열매가 좋지 않으면 나쁜 나무라고 하셨습니다. 이 표식에는 중간도 없고 혼합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언제나 성령의 인도하심을 간구하고,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화에 전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로 하나님께 풍성하게 드리는 충성된 일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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