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미래신문) 국가유산청은 왕의 초상인 어진을 봉안한 진전(眞殿) 사찰인 봉업사(경기 안성시)의 변천양상과 구조 및 특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화유산인 '안성 봉업사지'와 삼한·삼국시대 동아시아 해상교류의 거점으로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고성 동외동 유적'을 각각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으로 지정했다.
'안성 봉업사지'는 고려 광종(949~975년) 때 왕권 강화를 위해 태조 왕건의 어진을 봉안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고려사'에 공민왕 12년(1363년) 왕이 봉업사에 들러 태조 왕건의 어진을 알현한 기록이 있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석탑만 남아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초기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보물) 주변에서 발견된 청동 향로(보물)와 청동 북(보물) 등에서 봉업사(奉業寺)라는 글자가 확인됐으며, 1997년부터 2023년까지 5차례에 걸쳐 진행된 발굴조사로 중심사역과 진전영역의 외곽 담장을 확인했다. 특히, 진전영역은 중심 건물지와 중정 주변으로 회랑이 배치되는 등 고려시대 왕실 건축양식이 잘 보존되어 있다. 어진을 봉안한 것으로 전해지는 많은 진전사찰 중에 이처럼 고고학적으로 구조적 특징이 규명된 유적은 매우 드물다.
또한, 제작 연대, 사명, 지명, 인명 등 60여 종이 넘는 정보가 기록된 명문기와도 출토됐는데, 고려시대 기와 문양의 특징 외에도 봉업사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자료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절터에는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과 ‘안성 죽산리 당간지주’(경기도 유형문화유산)가 있고, 봉업사에서 인근의 칠장사로 옮겨진 ‘안성 봉업사지 석조여래입상’(보물)을 비롯해 주변에 장명사지, 매산리사지, 장광사지 등 고려시대 사찰유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당시 번성했던 불교문화를 엿볼 수 있다.
'고성 동외동 유적'은 남해안의 해양교통 요충지에 위치하여 삼한·삼국시대 고대 동아시아 해상교류 네트워크의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특히, 이 시기는 한반도 남부 지역의 변한 소국들이 주변의 집단들을 통합하여 보다 큰 정치체로 발전하는 전환기로, 대외교류가 정치체 발전에 미치는 영향을 규명할 수 있는 유물들이 다수 출토되어 학술적 가치가 크다.
이곳은 삼한의 고자국에서 삼국의 소가야문화권까지 연결된 고성 지역의 생활문화 중심 유적으로, 수차례 발굴조사를 통해 집 자리, 조개무지, 의례와 제사터, 철과 철기 생산 등 당시 해양 거점집단의 생활모습을 보여주는 유구와 유물들이 확인된 바 있다.
또한, 구릉 형태의 지형을 쌓고 깎아서 계단식 방어시설을 만들고 구릉 정상부의 의례시설, 광장, 주거군과 이 시설들을 감싸는 방어시설로서 환호를 두른 방식이 고성을 중심으로 한 남해안 지역의 정치체 성립과 발전을 보여주는 등 기원 전후부터 6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성장과 발전과정을 보여주는 복합생활유적으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국가유산청은 각 지자체와 협력하여 이번에 사적으로 지정된 '안성 봉업사지'와 '고성 동외동 유적'을 보다 체계적으로 보존·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조속히 마련하는 등 적극행정을 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