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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시사기획탐방

<일본 특집 인터뷰>이병용선교사, "일본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야... ‘일본놈들 회개해라!’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 일본인 목회자와 한인 목회자가 '한팀'이 되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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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전도는 그물이 아니라 낚시다.

"한 교회가 한 선교사를 지속적으로 도와 끊김없는 선교전략이 필요하다”

"일본인 목회자와 한인 목회자가 한팀이 되어야 한다"

(시사미래신문)

 

 

1. 이병용 선교사(목사)께서 일본에 가게 된 배경(계기)는?


- 40여년 전 서울에 있는 유명신학교에 들어가려다가 가족들의 반대에 부딪쳐 1년 정도 일본에 갔다가 돌아와 광나루 신학을 하려고 했다. 그런데 일본에 가서 별로 흥미를 못느끼고 노숙자 생활 3개월을 해야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일본에서 돌아오려다가 특별한 계기를 만났다. 그 때 교회를 찾아가게 되었다. 뜻하지 않게 일본사람을 통해서 일본에 더 발을 디디게 되었다. 일본은 교회를 찾기 매우 어렵다.

 

한국에 연락을 했는데 영국에 간 전도사님이 동경의 모 교회를 소개했다.

전도사님과 신학교를 같이 다녔다고 해서 찾아간 교회에서 3년간 신앙생활을 했고 얼마 되지않아 일본신학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일본에서의 신학을 쉽게 생각하지만 나로서는 무척 힘들었다.

언어의 문제와 특별한 신앙도 아닌 나에게는 정말로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 

 

일본에 정착을 하면서 일본신학을 하고 일본사람들을 만났다. 이 학교는 명문이다.

그곳 일본 동경기독교대학(TCU)에서 나는 외국인으로서는 졸업 1호였다.

거기서 신학도 했지만 일본어 언어를 배웠다. 밤을 새워 열심히 공부했지만 80프로밖에는 못따라갔다.

그래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동경신학대학에 편입을 했다.

이 학교는 이종성 박사님이 선배시다.

대학원까지 졸업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고 자녀들이 생기고 하다보니 점점 일본사회에 뿌리내리게 되었다.

 신학대학을 다닐 때 만났던 사람들은 나 이외에는 모두 일본인들이었다.

 

그들을 만나면서 일본인에 대한 참맛을 느꼈다고나 할까?

그때부터 바이블세미나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일본사람들이 평범한 삶을 살지만 예수님을 만나면 달라질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살아가면서 점점 일본에 대한 매력과 선교사들과의 친밀한 친교를 사역하면서 느끼고 있다. 

 

그러면서 한편 저는 오히려 거꾸로 한국의 교회들에 대한 부정적인 면을 생각하게 되었다. 한국에 제대로 된 목사들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되곤 한다. 


저는 한국의 장로회신학대학에서 신학박사 과정도 하고 있다.

공부중에 만나는 분들에 대해서 존경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위기가 지나가고 기회가 왔는데 제일 먼저 목사님들이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면 국내외적으로 귀한 일들이 생길것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때문에 2년 6개월만에 나왔는데 하나님의 예비하신 만남을 허락해 주실일이 기대가 된다. 

 

 

 

2. 역사적으로 보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일본을 선교하려면?

 

- 일본을 한마디로 정리하기는 힘들지만 한국이 기독교의 양적으로는 우위에 있다. 그리고 일본을 사랑해야 한다. 더 강조해야 할 것은 일본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일본놈들 회개해라!’ 이런 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 회개할 사람은 오히려 우리다.

이 말을 하면 화를 내는 분들이 있다. 우리는 일본에게 많은 물질문명, 학문, 정신 등을 고대사부터 많은 좋은 것을 전해주었다.  

 

일본이 명치유신이라고 하는 결정적인 일본 색깔을 내면서 바뀐 것이 틀림없다. 그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역사이지만 우리에게는 대적적이고 오늘날의 세계를 만들어온 시점을 만든 것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고대사적으로 보면 백제, 고려, 고구려에 일본에 상당한 영향력을 주었다. 그때에 일본에 전해준 사상, 종교가 지금의 일본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을 간단하게 겉으로만 보면 안되고 면밀하게 쪼개서 봐야한다.  

 

 

 지금의 일본을 볼 때 일본을 적대시하고 미워하기 이전에 내가 용서를 빌어야 할 점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한다.  우리의 약점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면으로 볼 때 일본이 우리에게 준 것은 우상숭배, 타종교를 심어준 것이 사실이다. 남녀호랑개교는 불교의 이단이다. 그들이 일본의 10프로 정도 있다.

그것도 창시자가 한국사람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리고 일본이 눈뜰수 있도록 굉장히 훌륭한 문명도 우리가 전해줬다. 아스카 문화부터 시작해서 상당하다.  나는 아스카문화의 중심지에 복음센타 건립을 하고 있는 사람중의 하나다.  

 

배우면 익힐수록 배울수록 우리와 끊을수 없는 기가막힌 관계를 가진 사람들이 일본사람들이다. 그 단초를 만드는 사건들과 인물들이 있었다. 일본에 깊이 들여다보면 이 민족은 기가막힌 사람들이고 매력이 있다. 일본은 현재 40년간 경제적으로 밑바닥으로 내려가고 있다. 경제, 문화, 종교, 사상,정치를 볼 때 우리민족이 그들을 무시할때 그들은 속으로 커가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막연하게 우리가 일제 36년 관계만 생각하고 그들을 내치면 안된다.

 

우리나라 사람이 관도 기질이 있어서 확 주었다가 뺐었다가 하는데 일본은 좋든 말든 받아들이지만 무작정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일본교(일본화)라는 것이 있다. 일본 밖에 있는 것을 조금씩 받아들이는데 기독교도 일본교라는 필터를 거쳐서 들어온다.

지금의 일본의 기독교를 순수하게 믿지 않는다. 좀 극단적이긴 하지만 일본화된 기독교라는 것이다. 이것을 알고 그들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겨야 한다. 그것을 눈뜨게 해 주는 것이 우리가 할 일 이다.

그렇게 하기위해서는 내가 올바로 서야한다. 올바로 서지 않으면서 와서 회개하라고 할 수 없다. 

 

한국에 올바르게 서있는 진짜의 선교사를 3만명, 5만명 보내고 있는가?

한국교회가 후원하는 일본 선교사들이 어렵다.

일본의 선교사들은 경제적으로는 양복입은 거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일본인은 내 속에 나오는 진실의 한방울의 생명수가 있으면 그들은 인정하고 죽기까지 충성하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그물전도가 아닌 한사람을 낚는 낚시꾼이 되어야 한다.

저의 일본 선교의 지론이다. “일본전도는 그물이 아니라 낚시다.”

 


 

 

3. 일본선교의 애로사항, 전략, 전망에 대해서 
한국교회가 어떻게 협력해야 할지에 대한 대안은?

 

-우리 한국이 일본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지만 현재는 기독신앙적으로 좋지 않은 현상들이 일어날 수 있었고 역사적인 해결이 문제점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에게 어려운 일이지만 그들을 무조건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고 회개하라가 아닌 내가 회개한다는 쪽으로 방향이 일본 사람들의 마음을 확 잡을 수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책임입니다. 세계에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선교비가 들어간 곳이 바로 일본이다. 세계의 선교사와 선교단체가 가장 많이 들어왔었다. 그러나 다 나갔다.

일본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한인들이 천 몇 백 명의 선교사가 있으나 일본에서 그들이 교회나 일본 사회에서 인정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부분적일수 있으나 전체적으로는 한국의 목회자나 선교사들이 대단히 사랑하고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는가 그건 답하기가 어렵다. 

 

 

 

 대안으로는 우리도 갚아주어야 한다. 선교사들을 통해서 갚아줄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우리나라 공식적으로 첫 번째 세례자를 만든이가 일본인이다. 명성황후의 사건때 일본으로 갔던 이수정이(그 당시에는 신앙이 없었다) 일본의 기독교 목사님을 만난다. 농경학자를 만난다. 그곳에서 책 2권을 본다.

하나는 조선은 농업으로 먹고 샆아야 한다. 하나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보고 깜짝놀라 이것을 3개월만에 완독했다. 그때 성령충만을 입어 노월정교회에서 세례를 받는다.

 

그 많은 일본사람들 속에 이 사람이 앉아있는 사진이 있다. 이 분이 우리 조선에도 선교사를 보내달라고 이야기 했다. 백방으로 노력해서 일본에 와있는 미국선교사들을 일본목사님들을 통해 미국으로 편지를 보낸다. 미국 기독교 잡지에 나서 한국에 오신 분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이다. 요코하마에 와서 마가복음 번역본을 가지고 한국에 들어와서 시작된 것이 우리나라의 기독교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갚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막연하게 일본을 선교하거나 돕지말고 한 교회가 한  선교사와 함께 끝까지 가늘고 길게 선교해야 한다고 당부하고 싶다. 그것을 원하고 있다. 

전략적으로는 일본인 목회자와 한인 목회자가 한팀이 되어야 한다. 절대로 일본인들의 위에 서면 안된다.

 

목사가 모든 것을 하지만 일본 안에서의 리더십은 일본사람을 세워주어야 한다.

이것을 하지 못해서 일본에 선교사와 선교단체가 실패했다.

일본사람 앞에 앞장서서 나를 도와라 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돕는다는 입장에서 해야한다. 일본사람을 세워야 하고 일본인을 영적 리더자로 계속 키워가야 한다.

이 일을 위한 단체가 되길 희망한다. 이것이 일본을 변화시키고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4.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어떤 방법으로 일본 선교에 동참하면 좋을까?

 

 -우선 무엇보다 우리가 일본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선교를 지수(숫자)화 해야 한다. 그래서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루트를 분명히 해야 하고 한국교회가 일본을 도울수 있는 대책이 이 지수에서 나오면 객관적인 사실을 가지고 스피커가 되어주어야 한다. 끊임없는 역할을 해야 한다. 큰소리 치고 뒷감당이 지속적으로 안되면 후휴증이 심해진다. 그 역할을 해 주었으면 좋겠다. 
일본선교사들이 깔아놓은 것을  잘 밟고 일본인을 세우는 전략으로 선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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