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19 (토)

  • 맑음동두천 26.2℃
  • 구름많음강릉 25.1℃
  • 구름조금서울 27.2℃
  • 맑음대전 28.5℃
  • 맑음대구 30.5℃
  • 맑음울산 25.6℃
  • 맑음광주 28.2℃
  • 맑음부산 25.6℃
  • 맑음고창 27.0℃
  • 박무제주 24.3℃
  • 맑음강화 23.2℃
  • 맑음보은 27.7℃
  • 맑음금산 27.6℃
  • 구름많음강진군 27.7℃
  • 맑음경주시 28.5℃
  • 맑음거제 25.9℃
기상청 제공

<정성구박사 칼럼> 꼰대와 광대

URL복사

 

(시사미래신문) 요즘 T.V드라마와 학생들 사이에 꼰대란 말이 자주 등장한다. 꼰대란 늙은이를 빗대는 말이기는 하지만, 교사들이나 선배들에게도 곧잘 사용된다고 한다.

아이들과 젊은이들은 자기를 가르치려 하는 사람이나, 충고를 하거나 과거를 들먹이는 사람들을 그냥 꼰대로 부른다. 그래서 <요즘 젊은이들> 또는 <요즘 후배들>이란 말을 하면 영락없이 꼰대 소리를 듣게 된다. 

 

가정의 달을 맞아 어린이 날도, 부모의 날도 있고, 스승의 날도 있다. 요즘 한국은 그렇지 않아도 어른이 없어지고, 어른 노릇하기도 힘든 세상이 되었다.

나이든 사람이 젊은이들의 잘못을 꾸짖었다가는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그리고 곧 바로 그런 사람은 꼰대로 취급 당하고 있다.

하기야 오늘날은 전교조의 활동으로 선생이 학생들을 체벌할 수도 없고, 인권(人權)이니 자율(自律)을 들먹이면서, 학생들은 선생님을 꼰대로 취급하고 있다.

 

그래서 어른들은 말하기도 힘들고, 어떤 문제에 대해서 구태여 간여할 필요도 없거니와, 장황하게 훈육식으로 말했다가는 모욕을 당하는 수가 있다. “KKondae” 즉, 어른 비하와 스승을 비하하는 꼰대란 말은 영어사전에 올라갈 정도가 되었다. 참으로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이것 말고도 노인경시 사상이 한국에 만연하다. 흔히 우리나라에는 말을 해도 <늙으면 죽어야 한다>느니, <뒷방 늙은이> 그리고 <늙은이가 뭐를 알아!> 등등, 경노사상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100세 시대에, 은퇴 후에 육체적으로, 경제적으로 노인으로 사는 것은 힘겹고, 어려운 때에 꼰대 소리까지 듣게 되는 것이 서럽다. 

 

그런데 목사의 설교와 목회에 대해서도 요즘 보수적이고, 복음 선포적 설교는 권위주의적이고 꼰대적 설교라고 비판한다. 말씀의 진리를 가지고 죄를 책망하거나, 목사로서 권위를 세우면 사람들은 듣기 싫어한다.

요즘은 긍정적 사고 방식을 설교하거나, 축복을 선포해야 아멘으로 화답하고 무탈한 시대이다. 최근에는 또한 꼰대라는 말의 반대는 광대목회도 있다고 들었다.

 

광대 목회의 특징은 자유로움, 무형식으로, 무당 굿하듯 춤추고 설교하는 스타일이다. 목회에 성공한 목사들 중에는 미국의 번영신학에 물들어 있다. 예컨대 로버트 슐러(Robert Schuller)는 긍정적 사고 방식을 강조하고, 설교 중에 토크쇼(talk show)를 해서 청중들과 교인들의 심리를 교묘히 이용했다.

미국의 새들백 밸리 커뮤니티 교회 릭 워렌(Rick Warren)은, <목적이 이끄는 삶>이란 심리요법을 사용해서 교회를 부흥시켰고 그의 책은 100만부 이상이 팔렸다. 이 책이 한국교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의 반성경적 사상을 한국 교회는 어찌 그리 환호하는지? 그는 높은 지위의 프리메이슨인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오래 전에 복음적 대설교가 로이드 존스(D. Martin Lloyd-Jones, 1898~1981)목사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특강을 하면서 설교자(Preacher)와 강단꾼(Pulpiteer)을 구별했다.

설교자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감 없이 해석해서 선포하는 자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강단꾼이란, 그가 가진 달란트를 총동원해서 청중을 자기 마음먹은 데로 들었다 놓았다 한다.

 

강단꾼은 코메디와 죠크와 웃음을 유도하고, 심리적 방법으로 청중들을 웃기고, 울리고, 환호를 유도한다. 강단꾼은 청중으로부터 영웅으로 환영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 보다는 철저히 설교자 자신이 목적하고 원하는 데로 청중을 즐겁게 이끌어 간다. 강단꾼은 특수한 달란트를 가진 자들이다.

 

1960년대 필자가 총신의 학생 시절, 나의 스승인 차남진 박사는 “목사는 신령한 배우”라고 했다.

물론 이 말은 설교자는 온전히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야 된다는 뜻이었다. 오늘날 탤런트들은 문화시대의 권력자이다. 강단꾼은 말하자면 바로 광대이다. 광대는 자기를 위장하거나 권위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개방을 함으로 청중의 편에 서고, 청중의 환심을 사서 즐겁게 만든다.

광대는 자신을 한껏 낮춤으로 청중들을 위로, 격려, 칭찬하면서 인기를 독점한다. 현대인은 참 편하고 즐겁게 신앙생활 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는 미국의 부흥하는 대형교회를 몇 곳 가 본일이 있다.

나는 그곳에 가보니 마치 미식 축구장에 온듯한 착각을 했다.

특히 수 만 명의 청중들이 모여 이른바 예배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즉, 예배를 축제로 만들어 기쁨이 넘치도록 하는 것을 보았다. 내가 본 그대로의 그 지도자는 영성(靈性)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성(感性)만이 있을 뿐이었다. 오늘날의 교회지도자들은 감성과 영성을 구별 못한다.

뿐만 아니라 감성을 영성으로 착각하고 있다. 영성은 위로부터 오는 것이라면, 감성은 인간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다. 하기야 지금은 감성의 시대요, 문화의 시대인 것은 맞다.

그래서 오늘날은 맑스주의 신봉자나 사회주의 신봉자들은, <문화맑스주의>라는 카드를 꺼내어 대중들이 그들의 목적에 따르도록 프레임을 만든다. 즉, 문화라는 콘텐츠(Contents)를 통해서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실현해가기도 한다.
 
설교란 말은 본래 헬라어 호밀리아(homilia)에서 나왔다.

호밀리아의 본뜻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서로 만나게 해준다>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과 그의 택한 백성들을 만나게 해주는 중개역할을 할 뿐이다. 사도바울도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그리스도에게 중매함이로다”라고 했다.

 

즉 설교자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죄인들에게 가감 없이 선포하는 것이다. 그런 개념이 교회사적으로 보면 정통개혁주의 신학자들인 크리소스톰, 칼빈, 카이퍼의 입장이다.

또한 지금 미국의 위대한 대설교가들 존 파이퍼(John Piper), 찰스 스윈돌(Charles Swindoll), 팀 켈러(Tim Keller)같은 불 같은 메시지는 모두 전통적인 선포적인 설교(preaching as proclamation)로 대 교회를 이끌어가고 있다.

 

한국교회목회에 대해 어떤 이는 “꼰대 목회는 이 시대에 적절하지 않고, 광대목회를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광대목회도 아무나 하는 것도 아니고, 타고난 능력과 달란트가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이 시대에 개혁주의 자들은 권위주의적 꼰대 목회가 되어서도 안되지만, 감성 중심의 인위적인 광대 설교자가 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배너

지역종합

더보기

오피니언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