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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국가유산청, 조선 후기 대표 실학서 '박제가 고본 북학의' 보물 지정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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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전등사 명경대', '삼척 흥전리사지 출토 청동정병' 등 8건도 각각 보물 지정 예고

 

(시사미래신문) 국가유산청은 조선 후기 국가의 발전과 부흥을 위한 개혁과 개방의 방법론이 담긴 '박제가 고본 북학의'를 비롯해 '구례 화엄사 벽암대사비', '대혜보각선사서', '예기집설 권1~2', '벽역신방', '합천 해인사 금동관음·지장보살이존좌상 및 복장유물', '창원 성주사 석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강화 전등사 명경대', '삼척 흥전리사지 출토 청동정병'을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 예고했다. (총 9건)

 

『북학의』는 박제가(1750~1805년)가 1778년 청의 북경을 다녀온 후, 국가 제도와 정책 등 사회와 경제의 전 분야에 대한 실천법을 제시한 지침서다. 이 책은 내외편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내편은 각종 기물과 장비에 대한 개혁법을, 외편은 제도와 정책에 대한 개혁안을 소개하고 있다.

 

이번에 보물로 지정 예고되는 수원화성박물관 소장 '박제가 고본 북학의'는 작성 시기가 초기본에 가장 가깝고, 박제가의 친필 고본(稿本)이라는 점이 분명하여 가치가 탁월하다. 이 책은 이후 다른 사람이 옮겨 베껴 쓰는 다양한 형태의 필사본의 저본(底本, 옮겨적을 때 근본으로 삼는 책)이 됐고, 편차 및 내용의 기본 틀과 방향을 결정하는 기준이 됐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지정 예고 대상은 첨지(籤紙)의 주석과 본문의 첨삭 내용을 통해 책의 내용이 수정·보완·편집되어 가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서지사적 가치가 크다. 그리고 이 책에는 박지원(1737~1805년)의 친필 서문(序文)이 함께 남아 있는데, 두 역사적 인물이 직접 쓴 글씨가 함께 남아 있는 매우 희소한 사례라는 점, 조선 후기 대표적인 실학서로 당대 조선 사회에 끼친 영향력이 매우 크다는 점 등 우수한 가치를 지녔다.

 

'구례 화엄사 벽암대사비'는 임진·병자 양난 이후 화엄사 중창 등 피폐화된 불교 중흥과 발전에 크게 기여한 벽암대사(1575~1660년)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그의 입적 3년 뒤에 세워진 비석이다. 비문은 당대 영의정이었던 이경석이 짓고, 명필로 알려진 오준이 글씨를 썼으며, 전액(篆額)은 도승지를 지낸 조계원이 썼다.

 

이 비석은 신라시대 이래 지속되어 온 귀부(龜趺, 받침돌), 비신(碑身), 이수(螭首, 머리돌)로 구성된 석비 형식을 따르고 있다. 동시기에 조성된 석비의 귀부나 이수의 조각 기법과 상통하면서도 용두형 귀부의 머리와 이수부 정면 방향에 새겨진 용에서 보이는 당당함 등 독특한 조형성이 돋보이며, 각 구성물의 이어맞춤 처리 기법에서 빼어난 기술적, 예술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승려의 비석이 많이 건립되지 않았던 시기에 건립된 희귀한 사례로, 처음 건립된 이후 현재까지 원위치에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한 편이다. 비석을 세운 시기, 비문을 지은 사람, 비문 글씨를 쓴 사람, 전액을 쓴 사람을 모두 기록하고 있어 17세기 비석 연구에 기준이 되므로 학술적 가치가 높다.

 

'대혜보각선사서'는 중국 임제종의 제11대 제자였던 보각선사 대혜가 송나라 때 편찬한 선종 전적이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에 전래됐는데, 현존 최고본은 1387년 승려 지담(志淡) 등이 주도하여 간행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지속적으로 간행됐으며, 등용사 소장의 이번 지정 예고 대상은 1418년 승려 신인(信因)의 주도로 판각된 목판을 후대에 찍어 만든 인출본이다. '대혜보각선사서'는 행과 글자수를 기준으로 6종류 판본으로 구분되는데, 이번에 지정 예고된 것은 11행 20자 계열 판본이다. 이 판본은 국내외에서 3건 정도만 확인되는 희소성 있는 자료로, 타 기관 소장 동일 판본에 비해 완전성을 갖추었으며 보존 상태도 좋은 편이다.

 

등용사 소장본에는 승려 신인이 해당 판본의 간행 불사를 주도한 사실과 승려 성민(省敏)의 활동 및 그의 서체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성민의 발문(跋文)이 편입되어 있다. 이는 관청 편찬 자료와 개인 문집에서는 확인되지 않는 내용으로, 당시 조선 불교계의 실체·동향 등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기록유산이다.

 

『예기집설』은 고대 중국의 예에 대한 기록과 해설을 정리한 예기에 원의 주자학자인 진호(陳澔)가 주석을 단 유교서이다. 지정 예고 대상인 '예기집설 권1~2'는 1328년 중국 건안(建安)의 정명덕가(鄭明德家)에서 처음 조성된 목판본을 저본으로 1391년 경상도 상주에서 복각된 판본으로 추정되는데, 형태 및 구결(口訣) 등으로 보아 여말선초에 인쇄된 후인본으로 판단된다.

 

고려 판본으로 희소성이 있으며, 현존하고 있는 국내의 판본 중 제작 시기가 가장 앞선다는 점,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예기의 주석서 및 저술의 원천 자료라는 점, 고려 말기 지방 관청에서의 간행 양상과 특징을 살필 수 있어 서지학 및 향촌사회사 등의 중요한 자료가 되어준다는 점 등에서 우수한 가치를 지녔다.

 

'벽역신방'은 1613년 허준(許浚)이 국왕의 명령으로 편찬한 의학 전문 서적이다. 광해군대에 유행했던 당독역(성홍열로 추정)에 대한 허준의 경험, 이론적 견해, 치료법 등이 담겨 있다. 내의원에서 목활자로 간행된 이 책은 적은 분량임에도 당독역에 대한 최초의 관찰이자 치료 대책이 담긴 것으로, 전염병 연구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그리고 현재까지 국내에서 몇 권의 동일 판본만이 확인되는 희소한 자료이기도 하다.

 

지정 예고 대상인 동은의학박물관 소장의 '벽역신방'은 다른 동일 판본들이 사고본이나 관서본인데 비해, 개인에게 내려준 사례라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이 책의 표지 안쪽에는 내려준 날과 수취인 등이 기록되어 있어, 이를 통해 1614년 종친인 봉래군(蓬萊君) 이형윤에게 내려졌음이 확인된다.

 

이 벽역신방의 내용과 묵서 기록 등은 당시 조선 사회의 전염병 유행 실태 및 조정의 대응 방법, 의학 전문 서적의 간행·보급 실체 등을 알려준다. 따라서 관찬 사서 내용을 보완하는 동시에, 당대 다양한 역사·문화적인 실체를 밝히는 원천 자료로 가치가 높다.

 

'합천 해인사 금동관음·지장보살이존좌상 및 복장유물'은 발원문을 통해 원래 성주 법림사 대장전에 봉안하기 위해 1351년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현존하는 고려시대 불교조각이 희소한 가운데 제작 연대까지 명확하여, 고려 후기 불교조각의 도상과 양식을 밝혀줄 기준작이 된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법림사 폐사 이후에는 해인사로 옮겨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정 기간 해인사 대적광전에 모셔져 있다가 현재는 해인사 구광루에 모셔져 있다. 관음과 지장보살로 구성되어 있는데, 현세와 내세의 구복적인 두 가지 신앙이 강조되어 제작된 작품으로, 고려시대 관음, 지장 신앙의 일면을 알 수 있는 좋은 사례이다. 특히 지장과 관음의 조합은 조각으로는 유일한 사례이므로,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관음보살좌상은 손의 정병 등 존상명을 알 수 있는 지표가 없어 법기보살좌상으로 알려져 왔는데, 이후 복장유물 중 발원문이 발견되면서 관음보살좌상으로 확인됐다.

 

해인사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복장유물은 조선시대 복장 의식이 완전히 체계화되기 이전 단계의 다소 자유로운 형식을 보여주고 있어 불복장의 발전사 연구에 있어서도 중요하다. 특히 복장 물목과 시주 물목, 불상 제작에 동참한 인물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어 당시의 사회·경제 및 시대상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창원 성주사 석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은 수조각승 승호(勝湖)를 비롯한 조각승들이 1681년 완성해 성주사에 봉안한 것이다. 발원문에는 모두 31구의 존상이 제작됐다고 쓰여 있고, 현존하는 존상 수도 31구로 제작 당시의 권속이 결손 없이 완전한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지정 예고 대상은 17세기 이후 시왕상이나 나한상 등 수량이 많은 조각에 자주 사용됐던 재료인 불석(佛石, 제롤라이트)으로 제작됐다. 경상도 지역에서 활약이 두드러진 승호는 불석을 잘 다루었던 조각승으로,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대부분 불석으로 만든 것이다.

 

'창원 성주사 석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은 승호가 제작한 명부조각 중 규모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17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볼 수 있으며, 완전한 구성을 유지하면서 원 봉안처에 전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역사적 의미가 있다.

 

'강화 전등사 명경대'는 사자형 대좌(臺座)가 거울을 받치고 있는 구조로, 사자의 등에 홈을 파고 거울을 꽂도록 되어 있다. 청색과 황색으로 칠해진 사자 대좌가 얹혀 있는 직사각의 받침대 바닥면에는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알려주는 묵서가 있어, 이 작품을 1627년에 밀영(密英), 천기(天琦), 볼생(奉生/鳳生)이라는 장인이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 명경대는 제작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연구가 어려운 17세기 목공예 작품 중 기준 자료가 된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뛰어나다. 명경대 중에는 이른 시기 작품이며, 조각과 채색 기법도 뛰어나 예술적 가치도 높다. 대웅전에 모셔져 있다가, 현재는 별도의 보존 공간에 모셔져 있다.

 

'삼척 흥전리사지 출토 청동정병'은 2016년 강원도 삼척 흥전리사지 동원 1호 건물지에서 발굴됐다. 청동정병이 출토된 곳은 신라~고려시기에 상당한 규모와 위상을 가졌던 지역 거점 사찰로 추정되는데, 2016년 서원 금당지에서 출토된 ‘국통(國統)’명 비편이 이를 뒷받침 한다.

 

지정 예고 대상은 몸체, 주구, 첨대를 일체로 주조했고, 주구의 뚜껑만 별도로 주조하여 여닫을 수 있게 연결한 형태이다. 기면이 매끈하게 처리되는 등 제작기술적인 측면에서 완성도가 높고 비율이 조화로우며 균형감이 있어 조형적 측면에서도 우수한 작품이다. 출토지가 분명하며 오랜 시간 동안 땅 속에 매몰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파손 없이 원형 그대로 출토된 만큼, 현존 사례가 희소한 통일신라의 정병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국가유산청은 이번에 지정 예고한 '박제가 고본 북학의' 및 '삼척 흥전리사지 출토 청동정병' 등 9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를 거쳐 각계의 의견을 수렴·검토한 후,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로 각각 지정할 예정이다.

 

앞으로도 정부혁신과 적극행정의 일환으로 우리 문화유산의 숨겨진 가치를 재조명하고 보다 합리적인 지정제도가 정착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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