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람의 믿음을 본받자(창세기12:1-9)
우리가 보통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 하나님의 친구’라고 말합니다.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은 갈라디아서 3장 7절에서 유래되었는데요, 거기에 보면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자손인 줄 알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다는 말은 반대로 이야기하면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에게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 믿음의 아버지’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연유된 믿음의 조상이라는 말은 또한 믿음생활에 모범이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나 믿음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아브라함이 모범이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에 대한 기록은 창세기 11장 27절부터 나오기 시작합니다. 아버지 데라가 가족들을 데리고 갈데아 우르에서 메소포타미아의 하란으로 이주를 합니다.
데라는 본래 가나안 땅까지 가려고 했는데(31절) 거기까지는 가지 못하고 하란에 머물게 되고 거기서 205세의 생을 마치게 됩니다. 가족과 함께 하란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어느 날 여호와께서 나타나십니다. 그러면서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듣고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땅으로 갔다는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믿음에 대한 여러 가지 요소를 만나게 되는데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믿음의 조상으로서 아브라함이 보여주는 믿음의 내용이 무엇일까를 살펴보며 나눌 때 크신 은혜와 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Ⅰ.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서 아브라함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불러주시는 데서 시작합니다.
성경은 왜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브라함을 택하셨는지, 거기에 무슨 자격이 있고 무슨 이유가 있는지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먼저 선택하여 섬겼다는 말은 전혀 나와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말할 때 세상의 많은 종교 중에서 내가 기독교를 택하였다, 세상의 많은 신들 중에서 내가 하나님을 선택하여 섬긴다는 말을 합니다만 이것은 기독교의 진리하고는 전혀 맞지 않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오히려 우상을 섬기는 환경에서 아브라함을 택하였다는 것이 성경에 나타난 기독교의 진리입니다.(행7:2-4, 수24:2-3))
그래서 예수님도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택하시고 불러주시고 예수를 믿게 하셨다는 것이 믿음의 시작이요 이런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요 섭리라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누군지도 알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 마음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누군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하나님을 찾으며 구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날 하나님이 나를 찾아오셨고 하나님을 알게 하셨고 하나님을 믿어야하겠다는 마음도 주셨고 믿는 마음으로 교회로 나오게 하셨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어떤 사건이나 사람, 아니면 매체가 중간역할을 하였을지 모르지만 궁극적으로 이렇게 하나님을 믿고 섬길 수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요 은혜요 역사였습니다.
아브라함도 모세도 바울도 그렇고 저와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놀라운 은혜요 축복입니다.
Ⅱ. 믿음은 떠날 것을 떠나고 포기할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찾아오신 여호와가 하신 말씀은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믿음은 떠날 것을 떠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옛 신앙을 떠나야 하고 옛 생활을 떠나야 하고 옛 습관을 떠나야 믿음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떠날 것을 떠나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한 것도 고향에서 그들에게 매여 있으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다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아브라함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만들어 파는 우상장사라고 합니다(수24장 참고).
그런 아버지 밑에서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겠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도 나의 옛 신앙과 옛 생활과 옛 생활방식을 떠나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더 성장하고 더 성숙하기 위해서도 신앙에 방해되는 것을 과감하게 떠나는 노력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익숙했던 것하고 헤어진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고향과 친척과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이 정말 얼마나 어렵고 힘든 결단이었겠습니까?
당시 아브라함은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5절에 아브라함의 일행을 소개할 때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었다는 말을 보면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매우 안정적인 삶을 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생활이 안정되어서 이대로 살면 평안하고 별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는데 그것을 포기하고 떠나야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또한 75세에 고향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그 시대는 지금보다 오래 살던 시절이었고 아브라함도 그로부터 100년을 더 살고 175세에 죽었습니다만 그렇다 할지라도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떠났던 고향도 돌아오는 것이 일반적인데 적지 않은 나이에 고향땅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그 시대는 씨족 중심사회였기 때문에 가족들의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대였습니다. 그런 시대에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아브라함은 그 어려운 결단을 하였습니다. 할렐루야.
Ⅲ. 믿음은 약속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했습니다.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떠나야 할 것들을 떠날 뿐 아니라 아울러 붙잡아야 할 것을 붙잡고 가라는 곳에 가는 순종이 또한 필요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시는데 나중에 보면 그곳이 가나안 땅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곳을 향해 어렵고 힘들고 위험해도 가야하고 그렇게 순종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순종하는 믿음을 위해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책임져 주심을 믿어야 합니다.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너를 축복하는 자를 내가 축복하고 너는 저주하는 자는 저주하리라’는 말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 하셔야 합니다.
가는 길에 함께 하셔서 지켜주시고 위험 속에서도 보호하시고 그의 발걸음을 인도하셔야 합니다. 함께 하심의 은혜가 우선할 때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결코 쉽지 않은 결단일 수 있습니다.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위험한 여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함께 하심을 확신을 가질 때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나아갈 때 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을 수 있기 바랍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겠다’(마28:20)는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을 믿을 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 약속을 믿지 않으면 떠나야 할 것을 떠날 수 없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없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모두가 이 믿음으로 승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 믿음으로 바로에게 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출하였습니다.
여호수아는 이 믿음으로 가나안 사람들을 물리치고 약속하신 땅을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이 믿음으로 골리앗과 대항하여 그를 넘어트리고 나라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리빙스턴은 이 믿음으로 아프리카의 열악한 환경을 이기고 복음을 증거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 주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호하십니다. 이 믿음으로 떠날 것을 떠나고 포기할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이 제시하신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포기하는 것은 새로운 것을 붙잡기 위함이고 떠나는 것은 새로운 축복을 누리기 위함입니다. 포기하지 않고 떠나지 않고 새로운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것을 갖기 위해서는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을 놓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떠날 것을 떠나라고 하고 새로운 곳에 가야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이미 복이 되었습니다. 복 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복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 복을 확신하면서 여러분의 믿음의 길을 끝까지 잘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Ⅳ. 믿음은 복 주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과 복 주심을 믿고 아브라함은 가나안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아브라함이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렀을 때 여호와께서 다시 나타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아브라함은 얼마나 든든하였겠습니까? 감격스러웠겠습니까? 이제까지의 힘듬과 어려움도 눈 녹듯이 사라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기까지 나와 함께 하셨고 여기까지 나를 인도하셨고 현장에서 나를 축복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얼마나 고맙고 감사했겠습니까?
아브라함은 그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이 예배는 사실 쉬운 예배가 아니었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넘어 체험의 신앙 순교적인 신앙의 표현입니다.
6절 하 반절에 보면, ‘그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드린 예배는 가나안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그들과 다른 제단을 쌓고 그들과 다른 신께 제사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선교초기에 선교사들이 와서 우리와 다른 예배를 드리고 다른 신을 섬긴다고 얼마나 많은 선교사들이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습니까?
아브라함의 경우도 이와 똑같은 것입니다.
우리 땅에 왔으면 우리가 섬기는 신을 섬기고 우리가 섬기는 방식대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아브라함은 그들과 다른 신을 다른 방식으로 섬겼습니다.
얼마나 위험하고 위태한 상황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위험하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 일을 한 번이 아니고 가는 곳마다 가나안의 똑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지만 어느 곳에 가든지 그곳에서도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고 이 믿음을 하나님은 기뻐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우리는 가끔 달리다가 잠시 멈추게 될 때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내가 하고 있는 것과 가고 있는 길이 바로 가고 행하고 있는가? 라고 말입니다. 기본과 처음 그리고 조상을 생각해 봅니다. 특별히 아브라함과 믿음의 선진들과 예수님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과 은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떠날 것을 떠나고 포기할 것을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약속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복 주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브라함이 보여준 올바른 믿음의 모습이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의 자세입니다
우리 가는 길이 아브라함이 갔던 믿음과 복된 길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