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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후 칼럼>웃을 수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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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미래신문)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회에는 언제나 혼란하고 놀랄 만한 일들이 매일같이 반복된다. 지난 옛사람의 가치관이나 삶의 방법이 현재의 젊은 세대의 가치관과 대치될 때, 서로에 대한 비난과 비판의 소리가 많이 나올 수밖에 없다.

 

“요즘 젊은 것들이란…참으로 걱정이야!” 또는 “요즘 애들은 우리 때와는 너무나 달라…” 이런 식의 비관적인 어르신들의 목소리가 젊은 세대에게 달갑게 들리지만은 않을 것이다.

 

60~80대들의 사고방식은 청년들의 사고와는 기본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물론 늦은 나이에도 청년들의 사고를 이해하려고 그들의 감성을 학습하고 언어도 배우면서 노력하는 분들도 많이 계신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본디 이해가 안 되는 경우도 많이 있는 것이다. 

 

같은 부모에게 나고 한집에서 자란 자식들도 다 다른 법인데, 하물며 지극히 다른 사회적, 경제적 환경에서 자란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지금이나 앞으로나 동일하게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다.

 

어느 날 들판에 퍼져 있는 질경이를 보았다. 내가 어렸을 적 시골 들판에서 질경이를 캐다가 어머니께 드리면, 어머니께서는 그것을 삶아 나물 반찬을 만들어 주셨고 나는 그것을 게눈 감추듯 맛나게 먹은 기억이 있다. 

 

요즘은 공원이나 강가, 호숫가 주변, 길가 어디를 봐도 질경이가 넘쳐나지만 사람들은 무심코 그것을 밟고 지나간다. 질경이만 보이면 부리나케 캐러 나가던 나는 이 모습이 여전히 생소하다. 바쁜 도시인들 사이에서 그것은 관심 자체를 받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사람이 아무리 밟아 대도, 그 풀은 보란듯이 잘만 자란다. 잘근잘근 밟혀도, 질기게 살아남는다. 그래서 이름이 ‘질경이’인가? 사람 다니는 길에서 무심히 밟히는 그 질경이가 조금 마음이 쓰일 때, 대학교 시절 식물학을 연구하는 교수님이 해 주신 말씀이 떠올랐다. 

 

“질경이는 오히려 사람들 눈에 잘 띄는 곳에서 많이 자랍니다. 밟아줄수록, 더 강하고 꿋꿋하게 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밟고 다녀도 됩니다.”

 

그 소리를 떠올리고 나서야 그 풀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사라지고, 작은 지혜가 찾아왔다.  

질경이도 아플 것이다. 내가 왜 하필 질경이로 태어나서, 이 사람들에게 이유 없이 이리 밟혀야 하나. 저 온실 속의 아름다운 화초로 자라 온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하진 않을까. 하지만 질경이는 여전히 질경이다. 그리고 그 아픔은 그를 더욱 단단하고 튼튼한 질경이로 자라게 한다. 그렇게 자라난 질경이는 나처럼 누군가의 아름다운 추억을 상기시키기도 하고, 어린 순은 맛있는 나물이 되고, 약이나 차로 쓰이기도 한다. 사람에게 밟히기만 한 질경이가 아름답기만 한 온실속의 화초보다도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는 것이다.

 

사람은 어떠한가? 밟힐수록 강해지는 자도 있지만, 밟힐수록 꺾이는 사람도 있다. 

세상은 우리에게 부단히 어떤 시련에도 꺾이지 말라고 강조하고, 이런 이들을 부각시키고 추앙한다. 하지만 나를 비롯해 우리 주변에는 밟힐수록 상처를 받고, 아파하고, 스스로 마음을 닫고 세상과 사람을 등지게 되는 경우도 많다. 나는 꼭 전자가 맞고, 후자가 틀리다고 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나는 “괜찮다”고 하고 싶다. 나는 젊은 세대의 아픔을 이해한다. 나도 그들과 똑같이 아팠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시간을 살아보니, 그때의 아픔은 시간이 지나 마법처럼 나의 단단함이 되고, 자양분이 되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감당치 못할 것 같은 상황은 여전히 생기지만, 그때보다는 조금 더 여유를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젊은 세대가 빛나는 아이디어와 적응력, 순발력을 가졌다면, 옛 세대는 이러한 지혜를 갖추고 있다. 서로의 가치관도 다르고, 삶의 방법도 대치되지만 서로의 다른 점을 “참 괜찮다”고 생각하며 웃어주는 것은 어떨까?

참으로 말 많은 세상이다. 필연적으로 우리는 많은 비난과 비방을 안고 살아간다. 

속상해해도 괜찮다. 그래도 꿋꿋하게, 웃어넘기려 해보자. 그것은 절대 무능한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더 단단한 질경이가 되어있을 테다. 언젠가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지혜로움이 우리에게는 더욱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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