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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 주시려는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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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하나님은 보호자가 되기를 원합니다(24).
2.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주기 원합니다(25).
3. 하나님은 평강 주기를 원합니다(26).

  

복 주시려는 하나님 (민6:22-27)          

 

복을 동양에서는 다섯 가지의 오복(五福)으로 말해 왔습니다. 수(壽)·부(富)·강녕(康寧)·유호덕(攸好德)·고종명(考終命)이 그것입니다. 부하게 장수하며 건강하게 지내며 이웃에 덕을 세우고 이 세상을 떠날 때에도 평안하게 생을 마치는 것을 말하는데 중국의 <서경>에 실린 내용이라고 전해집니다. 

 

하나님은 복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생물들에게 복주시고(창1:22). 또 사람에게도 복주셨습니다(창1:28). 히6:14에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이처럼 하나님은, 복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을 주실 때, 사람을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십니다. 특히 주의 종인, 제사장들을 사용하시되. 궁극적인 제사장은 예수님이요, 교회에서는 목사를 통해 성도를 축복하고, 구원받은 성도를 통해, 세상을 축복하기를 바라십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말씀하신 동시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은 어떤 복을 주기 원하십니까? 하나님이 마음입니다.

 

 

1. 하나님은 보호자가 되기를 원합니다(24).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복을 주시는 분은, 다른 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다. 여호와 하나님은 만복의 근원이요, 우주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요, 살아계신 분이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121편 3절에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시127:1하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악과 불의와 사탄의 간계함으로부터 보호하시고 지키시는 전능자이시다. 요즘의 세상을 보라. 세계 처처에서 전쟁과 테러와 사고와 사건과 전염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과 지진과 쓰나미와 가뭄과 홍수와 같은 자연 재해가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 세상에는 악이 부글부글 끓는 것과 같은 악의 도가니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한 순간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각과 입의 말과 발걸음 하나하나를 지켜 주지 않으시면 마음 편하게 살 수 없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각 사람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 지키신다는 ‘솨마르’라는 말은 ‘가시 울타리로 치다. 온갖 주의를 기울여 신중하게 보존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택한 백성들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마10:3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손길에 달려 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한 앗시리온에 팔려 가는 두 마리의 참새의 운명을 비교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그 많은 참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은 시23:2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해 받음을 두려워하지 않도록” 지키시고 보호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임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요즘처럼 불안한 사건들과 우울한 일들이 많은 세상에서 절망으로부터 소망으로 나를 지켜 주시고, 의심으로부터 믿음과 신뢰로 나를 지켜  주시며, 불안과 초조와 두려움으로부터 평강으로 나를 지켜 주시고 시기와 질투와 미움으로부터 나를 사랑으로 지켜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다니엘과 그 세 친구를 풀무 불에서 사자굴에서 요셉과 야곱 그리고 에스더를 지켜 주셔서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이 험한 세상에서 물과 불로부터 지켜  주시고, 하늘과 바다와 땅에서 총알처럼 빠르게 오고 가는 그 모든 세상살이 중에서 순간마다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매 순간마다, 날마다 진심으로 감사하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질병으로부터 건지셔서 어제 세상을 떠난 이들이 그렇게도 더 살고 싶어 했던 ‘내일’이란 시간을 오늘의 시간으로, 지금의 시간으로 지키고 인도하셔서 누리며 살게 하시니 감사한 일입니다. 

 

 

2. 하나님은 은혜를 베풀어주기 원합니다(25).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며 뒤 돌아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 중의 최고의 은혜는 나 같은 죄인이 죄 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예배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 은혜라는 ‘하난’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돌아보기 위해 상체를 구푸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지 않은가요. “지금까지 지내 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이런 찬송을 송구영신예배 때에 한 번 부르고 일 년 내내 더 이상 부르지 않고 살지는 않는가요. 은혜는 값없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내 힘으로, 내 지식으로, 내 경험으로, 내 능력으로, 내 역량으로, 내 수단과 내 방법으로 세상을 이기며 산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겸손해야 합니다. 주님이 내 호흡과 맥박을 주관하십니다. 주님이 내 손의 맥을 풀어 버리시면 순간 아무것도 아닙니다. 심근경색이나 호흡 장애를 겪어 보신 분들이 있는가요. 심장, 신장, 간, 폐, 위장, 소장, 대장, 췌장 등등 그 모든 것 어느 하나라도 병들고 상하고 약해지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시나요.

한 사람이 한 평생을 살아가다가 보면 언제 어디에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가 그 얼굴을 비추어 주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출15장 마지막에서 “기도하며 부르짖을 때에 마라에서 한 나무를 가리키셨습니다”. 민21장에서 길을 원망하고 먹고 마시는 것을 하찮다고 하다 하나님은 불뱀을 보내서 물게하여 죽게 되었습니다. 그때 백성들이 정신이 들어 모세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기도할 때에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자는 살리라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세와 아론과 훌은 산에 올라가 손을 들면 여호수아와 백성이 이기고 내리면 졌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은혜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백성들을 구원하실 뿐 아니라 일꾼으로 부르셔서 세우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모세를 부르신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호렙 산에서 양떼를 이끌던 나이 80세 된 모세가 애굽의 바로 임금을 만나고 동족을 이끌고 홍해를 육지처럼 건널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전쟁도 벌이지 않고 어떻게 여리고 성이 무너졌겠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그렇게 도망 다니고 숨어 다니던 다윗이 이스라엘의 임금이 될 수 있었겠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모압의 과부 룻이 베들레헴의 대 지주 보아스의 아내가 될 수 있었겠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나사렛의 동정녀 마리아가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을 잉태하고 낳아 기를 수 있었겠나. 내게 있어서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란 어떤 것입니까? 

 

 

3. 하나님은 평강 주기를 원합니다(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평강은 ‘솰롬’ 평안입니다. 이 평강과 평안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좋지 못하면, 그 영혼은 곤고하고, 불안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죄의 은총을 받은 후에, 진정한 평안을 경험합니다.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평강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사는 ‘솰롬’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쓰는 인사도 뜻이 같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이후, 모든 인간은 죄에 종노릇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죄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자, 평안이 사라지고, 두려움이 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피해서 숨었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빛이신 예수님께 나오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어두움 속에 있기를 좋아합니다. 우리 주님은 빛으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요1:9-11)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예수님은 참 빛이십니다. 예수님 세상에 오셔서, 각 사람에게 빛을 비췄습니다. 그러나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모셔 들이는 자는, 죄 문제를 해결 받게 되고, 결국 평강을 누리게 됩니다. 

골로새서에 보면,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1:20)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는 원래 귀족 출신이었습니다. 그는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인생의 참 만족을 얻지 못했고, 작품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에게 갈채를 받았으나 죄에 대한 공포와 불안한 마음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그가 한적한 시골 길을 걸어가던 중에 순박한 시골 농부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시골 농부의 얼굴은 유난히도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톨스토이는 농부에게 가서 평화로운 삶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농부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기 때문이죠. 그래서 내 마음은 기쁨이 가득 차 있습니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톨스토이는 그날부터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고, 그 후 그의 마음속에 들어차 있던 죄에 대한 불안과 공포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작곡가 하이든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작성한 50항목에 이르는 긴 유서의 한 구절을 보면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나의 영혼을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과 자비와 평강에 맡깁니다.”

 

성 프란체스코는 어느 날 우물에서 물 긷는 여인을 관찰했습니다. 물통에 물을 가득 담은 뒤 작은 나뭇조각을 물위에 띄우고 어깨에 메고 가는 것이었습니다.“왜 물 항아리에 나뭇조각을 띄우고 갑니까?” 그녀는 “아직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군요? 항아리가 흔들려도 물이 넘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죠.”라고 대답 했습니다.프란체스코는 “화와 분노가 일어날 때, 마음의 평안이 금이 가고 깨어질 때,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띄우면 되겠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합니다. 분노와 갈등, 마음의 동요가 일어날 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나타난 사랑과 인내를 생각하면 마음속에 평강이 찾아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천군천사들이 “지극히 높은 곳에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 중에 평화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터전을 이루려 십자가 위에서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우리는 부활 승천하신 주님, 다시 오실 재림 약속의 주님 안에서 그 얼굴을 나에게 향하여 드시는 여호와의 평강을 덧입고 누리며 증거 하면서 기쁨과 감사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은혜는 구원의 시작이고, 평강은 구원의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지켜주시고, 은혜를 주시고, 평강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이십니다. 27절에 “그들은 이같이 내 이름으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축복할지니, 내가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하나님은 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축복은 누가하나요? 제사장이 합니다. 그러면 복은 하나님이 주십니다. 주의 종이 믿음으로 축복하면 즉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시고, 책임지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의 이름으로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고 약속하십니다.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음은, 복을 비는 마음입니다. 남을 위하여 복을 빌어주는 마음은, 배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기에, 가장 아름답고 선한 마음입니다. 세상이 점점 더 어두워지고, 삭막해 지는 이유는, 남을 축복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남의 것을 빼앗으려는 사람은 많아도, 주려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남을 해치려는 사람은 많아도, 도우려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남을 저주하는 사람은 많아도, 축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복을 받아 감사 찬양하시는 모두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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