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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도우시는 성령 (롬8:26-30) 20191208

- 성령은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신다
- 성령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 성령은 구원에 이르도록 도우신다

도우시는 성령(롬8:26-30)

 

 

롬8: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8: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롬8: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8: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8:26-30)

 

 

날씨가 갑자기 영하로 떨어지는 가운데 맡겨진 일과 사역을 최선을 다해 도전하고 충성하다보면 잘되어 보람도 있지만 대부분 우리가 느끼는 것은 나의 무력함과 연약함입니다. 그리고 나라 적으로 개인적으로 다양한 문제와 어려움을 겪게 되면 이런 복잡한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하고 망막함을 갖게 되는데, 과연 믿는 성도로서 어떤 마음과 자세로 살아야 할까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귀한 비밀인 위로와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1. 성령께서 우리 연약함을 도와주십니다(26-27).

 

인간은 왜 연약함을 경험해야 합니까? 아니 왜 나는 약점을 갖고 살아야 합니까? 계속해서 건강하고 튼튼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만 그렇지를 못하는 것이 육신을 쓰고 있는 이 땅에서 인간의 모습입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연약함을 갖고 있고 경험하게 되는데 특별한 사람이 아닌 거의 모두가 연약함을 갖고 있으므로 살짝만 건드려도 상처를 받을 가능성이 있고 마음이 금이 가고 깨어지기도 합니다. 알게 모르게 십자가처럼 갖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환경과 조건을 경험하게 될 때 어떻게 받아 들이는가 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불평과 원망 그리고 낙심과 절망감을 느끼게 되겠습니다만 그러나 믿는 사람들은 과연 연약함속에 감사하고 기쁨으로 잘 극복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26절에서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주신다...”고 말씀합니다. 보통 성령님을 말할 때 보혜사라고 하는데 그 의미는 옆에서 돕는다 또는 변호하다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확신하고 감사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하나님이 우리 곁에서 도와주신다는 믿음과 확신입니다. 외롭고 낙심되는 것은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나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고독 의식을 갖게 될 때입니다. 그러나 내가 어려움을 당하고 연약할 때마다 나를 항상 옆에서 도와주시는 분이 있다면 외롭지 않고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에 항상 자신감과 의연함이 있게 됩니다.

 

예수님이 계실 때에는 바람과 파도가 칠 때는 잔잔케 해 주시기도 했고, 먹는 문제도 해결해주셨고 병든 자를 치료해주셨고 악한 마귀를 내 쫓아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러시다가 승천하시면서 요14장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떠나가면 너희를 고아처럼 내 버리지 않고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리니 너희를 진리가운데 인도하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게 될 때에 “내가 세상 끝 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의 힘이요 뒷 배경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보혜사 성령께서 어떤 방법으로 구체적으로 연약한 나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까? 성령을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님들은 성령께서 그 문제를 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를 하도록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연약함에 빠지게 되면 힘든게 있는데 그 것은 기도할 힘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니 인간은 빌 바를 알지 못하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기도하면 그래도 힘이 생기는데 그렇지 못하니 문제이며 걸림돌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는 두 가지로 모습의 기도를 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첫째는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게 하도록 도와주셔서 은혜 받게 하십니다.

 

탄식의 기도는 부르짖음을 넘어 가슴을 치면서 통곡하듯이 하는 기도입니다. 한나는 아이가 없어 마음이 아픈데 브린나에게 무시를 당하고 몹시 번민을 하게 될 때에 그는 성전에 올라가 마치 술 취한 것처럼 탄식하듯이 신세타령하듯이 성령께서 친히 그를 위하여 간구하도록 도와주셔서 은혜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선물의 열매가 아들을 얻게 되는 은혜와 복이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간구에 하나님의 그의 외로움과 생활을 돕는 배필을 이끌어 오셔서 사랑과 연애를 할 수 있는 도움을 주셨습니다. 히스기야는 죽을병이 걸려 인간적으로는 낙심하고 한 숨이나 쉬고 있어야 하는데 그가 했다기보다는 성령께서 그를 성전에 올라가 탄식하듯이 기도하도록 도와주시고 그의 생명을 15년 동안 연장시켜 주시는 복을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 있을 때에 고난과 고통 속에서 탄식을 하듯이 울부짖게 될 때에 하나님의 그들의 부르짖을 들으시고 하감하시 구원자 모세를 보내주셔서 출애굽하게 하게 하셨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고 모인 무리들이 성령의 탄식하듯이 간절히 기도함으로 인하여 교회가 크게 부흥되는 도움을 얻게 되었습니다. 믿는 성도들은 연약할 때 절대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가 기도하지 않는 것에 슬퍼하셔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는 절대로 환란은 있을지언정 절망은 없습니다.

 

둘째는 성령은 성도를 위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간구하십니다.

 

우리는 마음이 어두워져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제대로 기도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내 욕심을 내세워 하고 있는 것인가? 아리송할 때가 있습니다. 마치 세베대의 두 아들의 기도인 나만을 위한 욕심의 기도를 할 때가 참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믿는 자로 하여금 예배를 드리면서 기도하게 하시는데 솔로몬은 일천번제를 드리면서 얼마나 기도를 하였겠습니까? 주의 뜻대로 기도할 때에 그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게 여기셨고, 하나님의 지혜를 얻게 되었고 또한 부와 수와 영화의 복도 더블어 받게 되었습니다.

 

정리해보면 성령의 사람은 우리 마음에 내주하시고 우리는 또한 거룩한 성령을 모신 성전이 되었습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인하여 기도하게 하도록 도와주시고 은혜 받게 하십니다. 그래서 많은 신앙인들이 말씀하시는 것은 기도는 은혜 받는 비결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기도의 통로를 통하여 돕는 보따리 손길 그리고 은혜와 능력을 주시고 경험하고 알게 하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성령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도와주십니다(28)

 

선을 이루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뜻대로 성취되어짐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결정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 민수기23장19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하나님의 생각이나 결정에는 오류가 없으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결정에는 어떤 후회도 없고, 미련이나 실수도 없다는 말입니다. 그것이 비록 우리 보기에는 전혀 다른 방향일지라도 하나님의 최종적인 결정에는 오류가 없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결정이라는 것입니다.

 

전제조건을 잘 보셔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즉 믿음으로 구원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은 모든 것이 큰일 작은일 힘든 일 좋은 일, 연약한 부분 실패한 것 등 심지어는 죄를 지었던 그 모든 것까지도 합력하여 선(구원)을 이루게 된 다는 것 하나님이 뜻을 이루어 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삶의 초점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구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영화로운 삶과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요셉의 인생을 보세요. 형제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여 구덩이 빠지게 되었고 애굽에 팔리게 되었으며 애굽에 보디발의 종으로 팔려 살았던 삶 감옥에 살았던 일 이 모든 것에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와 주권을 인정하였고 믿음의 눈을 넓게 열고 항상 하나님을 사랑하며 함께 하는 삶을 살았을 때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과 구원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악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셨습니다.

 

은혜 받고 뒤를 돌아보면 결코 버릴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모든 것을 통하여 겸손하게 하시고 감사하게 하시고 영광과 찬송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유명한 시인은 이 본문 28절을 가지고 “나는 연약함을 피하려 하였지만 주의 길을 바꾸려 하였지만 구원을 반열에 서고 영화로운 살아가는 자는 벌써 하나님을 강제적인 작업이 시작이 되었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시기를 바라네”

순종이 남는 장사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버리시고 나를 안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의 연약함을 다 친히 담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기도로 무릎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 성령은 구원에 이르도록 도와주십니다(29-30절)

 

29-30절에 보시면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고 미래 정하시고 또한 그의 뜻대로 부르시고 또한 의롭다 하시고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지혜와 능력을 갖고 이 세상을 살면서 겪는 모든 것을 통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이 선은 구원의 부르심과 영화롭게 하심입니다. 성령은 모든 것을 동원하여 우리를 효과적인(효력 있는) 부르시는 것입니다. 우르에서 아브람을 부르신 것처럼 절망과 곤고한 삶에서 우리를 불러주십니다. 그리고 영화롭게 하십니다.

 

두 가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첫 번째는 이런 구원의 삶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이 하신다는 인정해야 합니다. 29-30절에 하나님이 8번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러니 구원의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두 번째는 동사시제가 과거시제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창세전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그 분의 지혜와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합당하게 디자인하셨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분의 섭리와 주권을 인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통속적 낙관론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무조건 시간이 지나가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긍정적인 낙관론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토마스 맨톤은 “불은 물을 끼얹거나 연료를 대주지 않으면 꺼져 버린다”고 하였습니다. 성령께서 계속적으로 은혜와 은사를 계속 공급하여주시고 창1:2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위에 운행하시리라” 성령은 기도의 공허함과 모든 일의 두려움 신앙의 의심에서 해방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나의 연약함 때문에 과연 나는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사건사고를 접하면서 좋은 일을 감사하지만 기분이 나쁜 일들을 경험하고 겪게 되면서 후회하면서 모든 것을 쓰레기처럼 버리고 싶지는 않습니까? 나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신 주 안에서 보혜사 성령께서 기도를 통하여 도와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구원하시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룸을 확신하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연약함이 변하여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복음송가 중에서 ‘나의 등 뒤에서 나를 도우시는 주 나의 인생길에서 지치고 곤하여 매일처럼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밀어 주시네 일어나 걸어라 내가 새 힘을 주리니 일어나 너 걸어라 내 너를 도우리’의 은혜와 돌보심이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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