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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성전에서 나온 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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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꿈과 희망이 있으면 즐겁게 살 수가 있습니다.
2. 에스겔은 계시의 꿈을 통해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3.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닿는 곳 생명과 회복이 있습니다.

성전에서 나온 생수(겔47:1-12)

 

요즘 코로나의 확산으로 모든 것이 위축이 되고 신앙생활도 여러 가지로 제한을 받고 있습니다. 과연 모든 것이 회복될 수 있을까? 그 이전을 생각하면서 기뻐하고 즐거운 날이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그런데 오늘 분문에서는 바벨론에 포로 상태에 있을 때에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희망의 환상의 이미지입니다. 우리도 에스겔에게 보여주신 환상을 같이 묵상하시면서 희망과 꿈을 갖게 되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 꿈과 희망이 있으면 즐겁게 살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꿈과 비전의 책,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늘로부터 오는 계시의 책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이란 이 땅에 발을 디디고 살면서도 하늘로부터 오는 계시를 매일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현실에 상관없이 꿈을 꿉니다. 이 꿈은 우리에게 기대를 주고, 희망과 소망을 바라보게 합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때로 현실 속에서 낙담하고 낙심할 수는 있지만, 결코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을 포기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나님으로부터 꿈을 받았습니다. 그는 밤하늘의 뭇별들과 바닷가에 있는 모래들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속에 꿈을 주시는 것을 경험하였습니다. 그에게는 아들과 딸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별과 모래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75살의 나이 든 아브라함이 자기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용기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비전과 꿈 때문이었습니다. 반대로 요셉은 젊은 나이에 꿈을 꾸었습니다. 그가 애굽에 팔려가 종살이를 하면서도 애굽의 총리대신까지 될 수 있었던 것은 10대 시절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꿈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종살이를 하면서 온갖 유혹과 고난을 견딜 수가 있었던 것도 그의 가슴속에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꿈과 비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사람은 나이가 많은 늙은이였습니다. 그러나 또 한사람은 젊은 사람이었습니다. 꿈의 내용도 달랐고 환경도 달랐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하늘로부터 계시를 받았고 그것을 마음속에 계속 새겨놓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어떤 꿈을 가지고 있습니까? 어떤 비전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젊든 나이가 들었든 간에 우리에게 믿음의 꿈이 있다면 우리는 인생을 즐거워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생명과 진리의 말씀이 이 강단에서 매일매일 폭포수같이 쏟아져서 영혼이 목마른 사람이 그 말씀을 먹고 마심으로 영혼의 갈증이 해결되기를 원합니다. 죄로 인해서 더러워진 마음이 예배와 말씀을 통하여 깨끗함을 받고 죄 사함의 기쁨을 누리기 원합니다. 육체가 연약하여 아파하며 신음하는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말씀을 들으면서 육체의 질병이 치유 받는 역사가 일어나기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성도님들이 성전에서부터 나아와 가정과 직장과 사회와 세계 열방을 향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선포하며 나아가기 원합니다. 이것이 제가 가지고 있는 꿈입니다.  

 


2. 에스겔은 계시의 꿈을 통해 소망을 품게 되었습니다.

 

  에스겔 예언자는 엄청난 회복의 꿈을 꾼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던 삶의 현장은 비참했습니다. 유대왕국은 바벨론제국에 의해서 멸망당했고 예루살렘성은 다 불에 탔습니다. 그곳에 살던 백성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붙잡혀 갔습니다. 그는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선민이라는 자부심마저 사라졌습니다. 그들의 삶은 노예처럼 마지못해 사는 인생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능성을 생각해보려 해도 가능성이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가망이 끊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때 에스겔은 하나님으로부터 놀라운 꿈과 비전을 받습니다. 그리고 그 비전을 통해 자기 백성들에게 소망을 불러일으킵니다. 

 

  에스겔서를 읽어보면 많은 환상과 비전이 그 안에 들어있습니다. 우리는 그중에서 미래의 희망을 강렬하게 제시했던 두 가지 환상을 기억합니다. 첫째 환상은 바로 마른 뼈 환상입니다. 에스겔은 골짜기에 마른 뼈들이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이 마른 뼈들을 향하여 대언하라는 것입니다. 이 마른 뼈들에 힘줄이 생기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줄에 살이 붙게 하라는 것입니다. 거기에 피부와 가죽이 붙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모양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누워있는 그들을 향하여 생기를 불어넣으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에스겔이 대언했을 때 그 마른 뼈들이 일어나서 거대한 군대를 형성합니다. 

 

  에스겔은 이 꿈을 꾸면서 커다란 기대와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 우리에게 소망이 있구나! 이 민족에게 희망이 있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구나! 우리가 다시 주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이 민족과 백성들을 다시 살려주실 것이로구나!’ 

  에스겔이 37장에서 마른 뼈들이 부활하는 환상을 보았다면, 47장에서는 성전을 통해서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는 성전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이 참된 예배자를 찾고 계심을 깨닫습니다. ‘아! 예배자가 없었구나. 수많은 사람들이 성전을 지나다녔는데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예배자가 없었구나! 예배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예배하는 사람이 필요해!’

 

그는 성전의 성소에서부터 제단 밑으로 흘러가는 생명수의 샘물을 보게 됩니다. 그 샘물은 크게 넘치는 강물이 되었고, 그 강물은 바다를 향해서 이르렀습니다. 이 환상은 계시적인 꿈이었습니다. 우리가 수많은 꿈을 꾸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시적인 꿈을 꾸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역사를 보게 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기다리게 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비전을 갖게 합니다. 에스겔은 이 환상을 보면서 이것이 계시의 꿈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3. 성전에서 흘러나온 물이 닿는 곳 생명과 회복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거룩한 하나님이 계신 곳이기 때문에 늘 세상과 단절되어 있었습니다. 거룩하다는 뜻은 세상과 구별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늘 닫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닫힌 공간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과 끊임없이 부딪쳤던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바리새인들은 거룩함을 수호하는 것만이 거룩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거룩함의 문을 닫아놓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부정한 사람들을 찾아갈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닫아 걸어놓은 채 나만 잘났고, 나만 거룩하고, 나만 귀하다고 여기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거룩함을 나누는 거룩함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 받는 사람을 친히 만지셨습니다. 문둥병자에게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의 죄인들과 소외된 사람들을 향하여 나아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오랫동안 전통 속에 가두어졌던 그 시대의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깨뜨려버리신 하나님의 역사요 은총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에스겔도 성전이 닫혀 진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성전에서 물이 흘러나와 세상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는 환상을 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왜 계시적인 꿈일까요? 성전에서 흘러나온 생명수가 오염된 강을 정화시키고 죽어버린 바다를 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생명수는 강물이 되어 아라바를 거쳐서 사해 지역까지 흘러가고 있습니다. 사해란 죽은 바다입니다. 그런데 이 죽은 바다를 살아있는 바다로 하나님께서 바꾸시는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물이 이르는 곳마다 나무들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나무에 결실이 맺어지게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 물이 흐르는 곳마다 없었던 고기들이 뛰놀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세상의 법칙과는 반대였습니다. 세상에서는 물이 오염되어 폐수가 되면 강과 바다로 들어가야 정화가 됩니다. 그런데 반대였습니다. 오히려 성소에서 흘러나오는 물이 생명수였습니다. 그리고 성전에서부터 흘러나간 물이 닿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 회복의 역사,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에스겔이 37장에서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는 환상을 본 것 같이, 성전에서 흘러나온 생명수를 통해 땅의 죽은 것들이 다시 살아나는 놀라운 환상을 47장에서 다시 보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서 47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대상인 성전으로부터 생명을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본문을 읽어보면 성전에서부터 생명수가 흐르기 시작해서 선지자의 발목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물은 점점 불더니 무릎까지 오고, 차츰 허리까지 오더니, 결국에는 헤엄쳐서도 건널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강이 됩니다. 물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어떤 결과가 나타났습니까? 엄청나게 많은 나무들이 그 강둑에서부터 새롭게 자라기 시작합니다. 불모지가 변하여 거대한 숲을 이룹니다. 그것도 과실나무였습니다. 그 과실나무를 보니까 먹을 만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그 잎사귀가 약재료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그 열매와 잎사귀를 먹음으로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진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물고기가 가득했습니다.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가므로 바닷물이 되살아나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에스겔 47:9)

 

  여기 중요한 말씀이 있습니다. 이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내가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내가 능력이 많은 것이 아닙니다. 내가 거룩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입니다. 내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 능력이 많으신 것입니다. 내가 듣고 읽는 말씀이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수인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가슴으로 받으면서 세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내 이름이 아닌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하여 나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함입니다. 에스겔은 이 생명수 환상을 보면서 자기민족에게 주신 하나님의 회복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의 노래를 부릅니다.

 

  오늘 성경말씀은 생명수에 대한 말씀입니다. 물은 흘러야 깨끗해집니다. 그러나 고인 물은 금방 썩어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왜 우리가 폐수를 두려워하고 오수를 혐오합니까? 그것은 땅을 오염시키고 생물과 사람에게 질병과 전염병을 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몸이 튼튼한 심장의 강력한 펌프질로 피를 원활하게 돌리기 원합니다. 그런데 혈관 어딘가가 조금씩 막히면 피가 고착되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부터 몸이 시들시들해지고 병들어갑니다. 이것은 교회도 똑같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흘러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가 우리 속에 있어서 생동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병들고 찌들지 않도록 힘써야합니다. 

 

  주님의 말씀인 생수의 강이 교회 곳곳에 흐르는데 방해하는 것들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일까요? 어딘가에 막혀서 어딘가에 웅덩이처럼 고여서 썩어 가는 데는 없을까요? 어디는 정체되어 있어서 변화를 안 만들고 어디는 분파를 만들고 폐쇄적으로 꽁꽁 뭉쳐 하나님의 역사를 방해하는 우리의 모습은 없는 것일까요?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변화해야합니다. 아무리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이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도 그 속에서 하나님이 말씀이 움직이지 않고 흘러넘치지 않으면 그것은 반드시 썩어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부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곳에는 생명의 역사가 생겨날 수가 없습니다. 

 

성전에서 흘렀던 샘물이 성전 밖으로 나가 강물을 이루고 그 강물이 흘러가는 곳마다 생명의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우리 믿음의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수를 가지고 나아가는 자리마다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고쳐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은혜를 내려주실 것입니다. 그것이 내 영혼일 수 있습니다. 내 육체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일 수도 있고, 우리의 직장일 수도 있고, 우리의 교회일 수도 있습니다. 이 민족과 공동체 곳곳의 자리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성전에서부터 하나님의 말씀이 생수의 강처럼 이 세상과 우리가 있는 자리에 흘러넘치는 자리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이 땅에 신음하고 탄식하는 것, 외롭고 병든 것들을 고쳐나가고 치유되고 회복되어져가는 복된 성도님들과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시사미래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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