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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요한이 전하는 복음(요 1:1-5)

예수는 영원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예수는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예수는 영원한 생명으로 빛되게 하십니다.

   요한이 전하는 복음(요1:1-5)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은 깨닫지 못하더라.

 

지난 주에 인천 구월동에 한 교회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예배당 외에 여러 방이 있는데 그 중에서 새신자실 이름을 붙여 놓았는데 다메섹실이라고 한 것을 보았습니다. 바울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던 장소입니다. 아마도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그런 이름을 붙였을 같아 공감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세상에 많은 문제들,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야당 황교안대표는 외교 안보와 선거법의 문제로 청와대 앞에서 단식 투쟁을 하고 있으셔서 마음이 아픔니다. 어느 때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며 우리는 무엇보다도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과 그 분 안에서 신앙생활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에 요한이 전하는 말씀을 통해서 복음에 새 힘을 얻기를 원합니다.

 

 

1. 예수님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1-2).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1장 1절 말씀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하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태초에 말씀이 계셔왔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계시니라, 계셨으니, 계셨고”의 시제를 보면 미완료형입니다. 미완료형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는 걸 의미하는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계속 계셨다는 겁니다.

 

1) 예수님은 창세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분이십니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태초 전부터 영원 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말씀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요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13절 말씀까지는 잘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14절 말씀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는 것은 말씀이 육신을 쓰시고 이 땅에 오신 분임을 어렴풋이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요1:15절에 “내 뒤에 오시는 이가 나보다 앞선 것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말이 바로 이 사람(예수)을 가리킨 것이라”

요8:56절에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시22:41-45절에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라는 말씀을 통해 다윗의 혈통을 이은 후손의 메시야이지만 다윗보다 앞선 다윗의 주, 예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은 삼위일체 제2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에서 “하나님”의 원어원형은 “oJ qeov"(호 데오스)”인데 관사 “oJ(호)”를 사용해서 유일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하는 말씀에서 가리키는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이때의 “하나님”의 원어원형은 “qeov"(데오스)”인데 관사가 없이 호칭하고 있습니다.

 

유일신 성부 하나님과 다르게 표시하기 위해 관사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하나님이시지만 다만 이곳에서는 성부 하나님과 혼돈하지 않도록 구분된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1장 14절 말씀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아멘.

 

17-18절 말씀입니다.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이 전하는 복음이신 예수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다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오신 그 분은 독생자 성자 예수님이십니다.

 

영원 전에 하나님과 계신 예수님을 알게 되면 우리의 영안은 지금 앞에 있는 책상과 좁은 공간만 보고 있는 저희들에게 예수로 인하여 우리의 시야는 영원에서 영원까지 볼 수 있게 영안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3).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3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셨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장 3절 말씀입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물이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 없이는 창조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이러한 사실을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1장 15-17절 말씀에서 더욱 더 자세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이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아멘.

 

요즘 단풍이 져가고 있는 계절입니다. 설악산에서 내장산까지, 여러분 단풍 보시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노란색 빨간색 말라진 잎 그 하나, 하나가 시입니다. 그 나무를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것만이 아니라 삼라만상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누가 만들었습니까? 부모님을 통하여 조물주이신 예수님이 정답입니다.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작품 아상의 걸 작품입니다. 짐승도 주인을 알아보는데, 우리는 주인을 알지 못하면 정말 바보입니다.

 

이처럼 만물과 세상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이와 같으므로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신가 하는 질문에 대한 두 번째 해답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창조되었다는 겁니다. 이러한 창조를 통해 얻게 되는 은혜와 축복을 받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하늘과 땅만이 아니라 더 놀랍고 궁극적인 새 창조가 있습니다. 부분적인 이 세상에서의 창조가 아니라 완전한 창조가 이루어집니다.

 

이사야 65장 17절 말씀에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아멘. 요한계시록 21장 1절 말씀에서는 그러한 광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아멘.

새 하늘과 새 땅은 어떠한 곳입니까? 하나님께서 친히 함께 해주시므로 죽음이 없으며 애통과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도 없으므로 슬프고 괴롭고 답답해서 흘리게 되는 눈물이 없는 곳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 말씀에 이어서 나오는 3-4절 말씀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하늘과 땅, 이 세상의 모든 걸 창조해주시고 더 나아가 우리가 영원히 머물게 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해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드리시고 아울러 그를 앙모할 때에 하늘로부터 새 힘을 얻게 되어 독수리처럼 올라갈 수 있는 창조의 능력을 힘입게 되는 것입니다.

 

사40:27-29절에 “야곱아 어찌하여 네가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이르기를 내 길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내 송사는 내 하나님에게 벗어난다 하는냐 너는 알지 못하였으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는 피곤하지 않으시며 곤비하지 않으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시나니”라고 합니다.

 

 

3. 예수님은 생명, 사람들의 빛으로 나타나십니다(4-5).

 

4절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생명이시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1장 4절 말씀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그 안에 생명이 있었다는 건데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겁니다. 이 생명은 영적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1장 1-2절 말씀에서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 보여주고 있습니다.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 아멘.

 

우리 인간의 생명은 목숨 부지하며 살아가는 생명이고 그 생명은 살아내려는 욕구와 기본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 반면에 예수님 안에 생명은 살리는 생명이요 영적이며, 영원한 생명이기에 사람들의 빛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소개하면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선언하시기도 하였습니다. 고전15:45절에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life giving Sprit)이 되었다.”고 하십니다.

 

가나 혼인잔치에 찾아오신 생명을 주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기쁨과 행복한 가정으로 세워졌으며 죽어가는 신하의 아들에게 말씀하신 생명의 주님은 살려주셨습니다. 38년 병자도 생명의 주님을 만나서 자리를 들고 일어나 걸어가는 승리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오병이어를 가지고 5000명을 먹이시고 풍성케 하셨으며 날 때부터 소경으로 나신 자를 고쳐주셔서 모든 것을 보게 되고 죽은지 나흘 되었던 나사로가 생명 되신 예수님을 통해 그분의 말씀을 들을 때에 살아났으며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를 보여주는 빛 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어떤 예수님이신가 하는 질문에 대한 세 번째 해답은 예수님은 살리시는 생명이시라는 겁니다. 그 생명이신 예수를 모시게 되면 빛으로 나타나 나의 진면목을 보게 되고 죄인임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가며 주어진 현장 하는 일속에서 빛을 발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5절에“빛이 어두움에 비추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리고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은혜를 입은 요한, 요한복음에는 요한이 2명 소개되고 있는데 세례요한과 사도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 태어나게 되어났으며 특별히 나실인으로 선택받아 주님의 길을 예배하고 준비하는 사명을 감당하였으며 주님을 증거 하였으며 정의로운 사자의 사명을 장 감당할 때 예수님은 ‘여자가 나은 자 중에 큰 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도 요한은 우레의 아들에게 사랑의 사도로 변하였으며 제자로 부름 받아, 주님을 끝까지 따랐으며 예수님을 오고 오는 세대에 증거 하는 귀한 삼을 살았습니다.

 

세상은 알지도 깨닫지도 못하지만 요한이 전하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바로 알게 된 것이 복이고, 더 큰 것을 보게 될 것이며 그 이름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누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어 빛을 발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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