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 칼럼>광야 교회

  • 등록 2026.03.06 12:5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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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미래신문)

 

 <신의 악단>이라는 영화를 보면 눈 덮인 광야에서 주인공이 찬양하는 장면이 일품이었다. 감독은 극적인 효과를 연출하기 위해 몽골에서 촬영했다고 한다. 한반도에는 광야가 없다. 광야의 이미지는 곧 <황망함> <고독> <고난>을 연상케 한다. 성경은 세례요한을 가리켜 <광야에 외치는 소리!>라고 했다. 청중도 없고, 듣는 이가 없었지만, 그는 거침없이 회개를 외쳤고, 메시야를 증거 했다. 세례요한은 곧 나타나실 메시야를 증거 하면서 ‘자신은 그분의 신들메 풀기도 감당키 어렵다’고 자신을 낮추었고, 자신은 메시야의 선구자요, 한낱 종일 뿐이라고 선포했다. 세례요한은 가난했고, 하나님 앞에서 순결했다. 그는 선지자로서 메시야 오심을 외치고, 불의한 헤롯 정권을 지적하다가 결국 목 베임을 당하여 순교의 잔을 마셨다.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는 말하기를,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고,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날 날이 장치 올 것이다」라고 했다. 즉 ‘광야와 메마른 땅이 변하여 꽃과 열매를 맺는 옥토가 될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래서 ‘장차 메시야가 오면 새로운 세상이 될 것이다’라고 예언했던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지형을 인간의 죄 된 심령을 상징적 언어로 표현했다. 사실 이스라엘 현지에 가보면 이사야의 예언을 이해할 수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사야의 표현처럼, 중동과 이스라엘은 광야와 사막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에 한국은 지형적으로 산천이 아름답고, 강이 유유히 흐르고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로 세계에서 축복받은 금수강산이다. 하지만 이것은 겉으로 보여지는 것일 뿐, 지금의 풍요로운 대한민국은 깊게 병들었고 망가졌다. 그래서 정치, 경제, 법조계 등 모든 곳이 광야 같고 사막같이 메말라 있다.

 

모세는 40년 광야에서 이스라엘 대 민족을 이끌었던 지도자였다. 60만이 넘는 대중들을 이끌고 광야 사막을 지나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해 가는 것은, 출애굽의 구원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신약에 와서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초대교회가 생겨남과 동시에 교회를 박해하기 시작한다. 특히 성령이 충만했던 스데반 집사가 위대한 설교를 하자, 기득권 세력들은 그를 향해 돌을 던졌고, 결국 스데반은 신약 시대 첫 순교의 제물이 되었다. 사실 스데반의 설교는 구약 개론이라 할 수 있고, 구약의 모든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와서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라는 성경의 핵심인 <복음>을 그대로 전했다.

 

스데반은 그의 설교 중에 ‘모세가 40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던 그 공동체를 <광야 교회>’라고 표현했다. 광야 교회는 사도 시대의 교회와 내용은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택함 받은 공동체가 광야 교회라면, <신약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 값으로 세워졌고,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러니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 공동체 안에 있는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된다. 교회는 교회 자체만을 위함이 아니고,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성도들에게 영의 양식을 공급해야 한다. 이와 동시에 교회의 목적은, 선교적 사명을 감당하면서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을 1차 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또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함이다(H. Ridderbos).

 

그렇다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의 주권>이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치며,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교회는 사도적 교회가 아니고, 미국식 번영 신학과 신앙이 한국의 모든 교회를 점령했다. 그래서 교회들은 세상이야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내 알 바 아니고, 그저 이 땅에서 축복의 삶을 누리고 평강을 누리며 사는 <행복 추구>와 <소원 성취>의 종교로 변질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 이 땅에는 교회의 부패와 세상의 불의를 향해 목숨 걸고 외치는 광야의 소리가 없다. 모두가 타협하고, 아첨하고, 중도라는 가면 뒤에 숨어 있고, 좋은 게 좋은 것이라 하여 사기꾼과 도적들이 나라를 이끌고 있어도, 누구 하나 입도 벙긋 못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나는 지난 3.1일 절 107주년에, 부산 서면에 위치한 <광야 교회>에 설교하러 갔었다. 그런데 젊음의 거리에 세워진 광야 교회는 그냥 텅 비어 있었다. 반면에 거리의 좌우로는 젊은이들이 빼곡히 몰려다녔다. 엄청난 인파들이 몰려다녔지만, 복음을 들으려는 자는 하나도 없었고 모두가 무심했다. <광야 교회>는 무슨 정치 시위를 하려는 것도 아니고, 무슨 주장을 하려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곳에서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 교회의 지도자들이 외쳤던 <복음 운동>이 없었다면, 3.1운동도 없었고, 지금의 자유대한민국은 불가능했다’라는 말을, 허공을 향해 쏘아 올렸다.

 

1885년, 선교사들을 통해 이 땅에 들어온 복음은 사람들을 새롭게 했고, 그렇게 깨어지고 변화된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일제에 항거하는 3.1 만세 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이처럼 복음을 통해 힘을 얻은 사람들이 앞장서서 민중을 깨웠고, 민중을 이끌었다. 이것이 <복음의 힘>이다. 일찍이 바울은 ‘복음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오늘의 한국 교회는 머리 밀린 삼손처럼 힘을 전혀 쓰지 못하고 있다.

 

 광야에서 순결한 복음을 피 터지게 외치는 자들을 기다리면서...

강은민 기자 rkddmsals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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