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구 박사 칼럼>한글 성경과 정통파 유대인

  • 등록 2025.10.18 21: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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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미래신문)

 1891년 정통 유대인이 조선에 왔었다. 유대인은 유대교를 신봉하거나 혈연이나 개종을 통해 고대 히브리인의 후예가 된 민족이다. 또 유대인은 고대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출애굽 후에 가나안에 정착해서 이스라엘 왕국을 세웠다. 그러나 바벨론, 페르시아, 로마 등의 지배를 받으며 그들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졌다. 유대인들은 유럽 각국과 미국에 흩어졌으나, 독일의 히틀러 시대에 600만 명이 학살되는 비극의 사건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예루살렘에는 포성이 멈추지 않고 있다. 유랑 인이 된 유대인들 중에는 러시아와 동유럽에 많이 살고 있다.

유대인 중에는 정통파 유대인들이 있고, 자유화된 유대인들이 있지만 그들은 모두가 토라(Tora, 율법서)를 배우고, 읽고, 시편을 암송하는 것이 공통이다. 그들은 오랜 세월 나라를 잃어버리고 살았지만, 2000년 동안 모국어인 히브리어와 히브리말을 쓰는 독특한 민족이다. 하지만 이들 중에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람을 <메시아닉 쥬>라고 하는데, 가끔은 정통파 유대인들로부터 테러를 당하거나 폭력을 당하기도 했다. 2010년 김종철 감독이 만든 영화 <회복>이 상영된 적 있었다. 그 영화의 실제 인물은 데이빗 오르티즈(David Ortise)의 아들로 정통파 유대인들의 폭탄테러로부터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그가 한국에 왔었고, 우리 한국 칼빈주의 연구원을 방문한 적도 있었다.

 

 오늘의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에 정통파 유대인들이 살고 있었다. 당시에 그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모두가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그때 이차크 프룸킨(Yitzhak Frumk-in)이란 정통파 유대인 청년이, 고향의 유대교 회당학교를 졸업하고 1888년 김나지움(고등학교)을 마쳤다. 그는 정통 유대인으로써 율법서와 시가서에 정통하였다. 하지만 그는 제정 러시아의 경제 공황과 유대인들을 배척하는 러시아인에게 실망하여, 러시아를 떠나 일자리를 구하려고 동분서주했다. 그는 미국으로 가려다 여의치 않게 되자, 시베리아 벌목공사장으로 일하러 가려고 일본 나가사키에 들리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개신교 예배에 참석했다가, A.A 피터스(1869~1955) 목사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피터스 선교사는 화란 개혁교회(Dutch Reformed Church) 선교사로서, 미국 웨스턴 신학교(Western Seminary)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학자였다.

 

피터스 목사로부터 성경 연구와 설교를 들은 정통파 유대인 청년은 개혁주의 신앙으로 변화되었다. 그가 세례를 받을 때, 세례 준 목사의 이름 그대로 피터스(Pieters)로 불려 지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알렉산더 알버트 피터스(Alexander Albert Pieters, 1871~1958)이다.

 

그 무렵 일본에서는 한글 성경 번역과 반포 사역을 추진하던 미국 성서 공회 일본지부 총무 루미스(Loomis)가 유대인이 기독교로 개종했다는 소식을 듣고, 피터스를 찾아와 ‘한국에 권서로 가자!’고 권하니, 피터스는 시베리아 벌목공으로 가려던 자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서울로 왔다. 한국에 온 피터스는 <제중원>에서 일하게 되었고, 선교사 무어(S.F. Moore)와 함께 한강을 따라 경기도 광주와 오늘의 성남 지역에 여러 개의 교회를 세웠다. 그리고 그는 영국 성서 공회의 권서로 일하면서, 신약에 비해 구약성경 번역이 잘 안되는 것을 보고, 구약 번역을 시작했다. 우선 피터스는 아침, 저녁으로 암송하던 히브리어로 된 시편을 한국어로 번역하기 시작해서 1898년에 <시편 촬요>가 배재학당 인쇄소에서 출판되었다. 피터스는 시문학에도 소질이 있어, 1898년 <눈을 들어 산을 보니> <주여, 우리 무리를> 시를 지어 찬송가에 올렸다. 그 후 그는 1900년 1월 미국 멕코믹 신학교를 졸업하고 다시 한국으로 와서, 구약 성경 번역에 직접 가담했다. 그는 정통파 유대인에서 신실한 목사, 선교사가 되어 한국교회에 크게 이바지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일찍이 존 로스(John Ross)가 심양에서 신약 성경을 한글로 번역했고, 일본에서 이수정이 이두현토 성경과 누가복음을 번역 발행하여 1884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가 제물포로 입항할 때 가져왔다. 그러나 구약 성경 번역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정통 유대인을 기독교인이 되게 하시고, 개혁주의 신학을 알게 하시고, 히브리 원어 성경을 한글 성경으로 만들기 위해 그를 사용하셨다. 그러니 피터스의 공로가 이만저만 아니다.

 

 한국은 참 축복받은 나라이다. 만주와 일본에서 성경을 번역하여 우리에게 복음의 여명을 깨우시더니 결국 정통파 유대인을 개종시켜 한국으로 보내시고 한글 성경 번역에 관계케 한 것은 크고도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는 세 번의 결혼을 했는데, 첫째 부인과 둘째 부인은 병을 얻어 주의 부르심을 받았고, 지금은 양화진 선교사 묘역에 잠들어 있다. 피터스 선교사는 그의 셋째 부인과 함께 미국 L.A의 파사데나에 안장되어 있다. 파사데나는 은퇴 선교사들의 마지막 안식처이다.

 

 최근에 한국교회 안에 성경 번역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논쟁이 있지만, 성경 번역에 초역 자가 히브리어가 모국어인 정통파 유대인 출신이며, 북 장로교회 출신의 피터스가 직접 번역에 가담한 것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요 축복이었다.

강은민 기자 sisamirae7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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