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미래신문)
우리나라는 반세기 만에 전쟁의 폐허에서 중진국을 넘어 세계 10위 안팎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기성세대는 우리나라가 후진국과 중진국을 피부로 느끼면서 생존하기 위한 삶을 살아왔고 또 다른 세상, 선진국의 삶을 누리고 있다. 그러다 보니 기성세대는 아직도 경제성장이 되지 않았을 때의 과거 권위주의적인 제도와 문화에 익숙할 뿐만 아니라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시대가 급변함에 따라 성공하는 지식의 유형도 과거의 전통적 지식 못지않게 암묵적 지식, 신체적 지식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스포츠에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부딪히며 터득하는 신체적 지식은 더 고도화되고 정밀성을 요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패러다임도 예전에는 5년 주기라면 지금은 2년 주기다.
쇼츠 등 콘텐츠 소비방식도 1분에서 이젠 15초, 10초까지 줄었다.
급변하는 우리 시대에 필요한 MZ세대의 스포츠계의 공평은 과연 어떤 것일까?
나는 스포츠계의 불평등의 문제를 국가 대표로서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에서 찾았다. 그는 “제가 목표(올림픽 금메달)를 향해 달려온 원동력은 분노였다.”고 말했다. 분노의 사전적 정의는 자신의 욕구실현이 저지당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당했을 때, 부당한 대우나 차별에서 몹시 성을 낼 때 사용하는 언어다. 안세영 선수의 분노는 무조건적 평등(equality)에 대한 분노, 그것이었다.
스포츠에서의 공평은 무조건적 평등이 아니다. 무조건적 평등은 노력과 상관없이 모두에게 균등한 결과가 돌아가는 시스템이다. 공평(equity)은 선수들의 다름을 인정하여 각 개인의 상황과 필요를 고려하여 경쟁력을 극대화하는데 필요한 지원을 함으로써, 모두가 동등한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의로운 불평등’이다.
모든 시대와 사회를 관통하는 절대적인 공평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스포츠 종목마다 선수들의 역량을 키우는 적합한 공평이 따로 있음을 보여준다.
흔히, 교육계에서 대두되는 맞춤형 교육과 맥을 같이 한다. 학생 개개인의 잠재 능력을 최대한 찾아내어 더 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고, 부족한 학생에게는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어서 학생 각자의 동반성장, 행복한 미래를 다지는 맞춤형 교육의 바탕이 정의로운 불평등이다. 다시 말해 정의로운 불평등이 맞춤형 교육의 저변에 깔려있다.
오래전의 프랑스 대혁명도 왕실에 대한 대중들의 분노로 시작되었다.
최근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일본의 나카무라 슈지도 이렇게 말했다. “내 연구의 원동력은 분노였다. 그것이 내게 모든 동기부여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청색 LED(발광 다이오드)를 발명하고도 회사로부터 인정을 받지 못한 분노가 에너지의 근원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필자도 9급 공무원으로부터 시작해서 국립대 총장이 되기까지 분노가 바탕이 되어 한 단계 한 단계 성장의 변화가 체감될 때마다 행복을 느끼며 도전할 수 있었다.
안세영 선수가 속한 베드멘트 협회가 주장하는 무조건적 평등은 모든 선수가 동등한 가치와 권리를 가짐을 강조한다. 협회는 기성세대의 사고에 머무르고 있기에 조직보다는 개인의 경쟁력에 성과를 기대하였다.
스포츠계의 경쟁력 요체는 공정, 공평, 평등 이 세가지 원칙을 적절히 조화롭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선수의 경쟁력도 높이고, 각종 불평등을 해소하는데 기여한다.
사회의 부조리가 약자들의 분노에 의해 해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싫은 감정과 혐오감이 있어 비난하려는 의도가 중첩된 증오와 달리 분노는 대상에 대한 애착이 있어 그 분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기도 한다.
안세영 선수의 분노가 우리나라 배드민턴계, 더 나아가 스포츠계 전반에 과거 기성세대의 권위주의적 문화 잔재를 극복하여 진정한 공평의 원리, 정의로운 불평등이 작동되는 계기가 되기를 한편으로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