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미래신문) 계절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다. 여름의 끝자락인 8월 24일, 경기도 화성시 송산포도로 일대에는 알알이 영근 포도송이가 탐스럽게 익어가며 본격적인 수확철을 알리고 있었다.
오는 9월 5일부터 6일까지 화성에코팜테마파크에서 열리는 ‘제12회 화성송산포도축제’는 송산포도의 맛과 품질을 알리고 농가와 소비자가 만나는 대표적인 농업문화축제다. 올해는 포도 판매와 시식, 수확 체험, 전시와 공연 등 농업·문화·관광이 어우러진 체험형 축제로 마련된다.
하지만 탐스럽게 영근 포도 한 송이 뒤에는 기후변화와 생산비 상승, 인력 부족, 달라진 소비시장에 대응해야 하는 농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축제를 앞두고 34년간 포도밭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송산포도 장인’ 팜스토리 이완용 대표를 만났다. 300여 포도 품종을 실증하며 국내 육성 품종 보급과 포도산업 발전에 기여해 대통령 표창을 받은 그의 농부 인생과 송산포도의 오늘과 미래를 들어봤다.
“벼농사 지었더니 500만 원…
먹고살려고 포도를 시작했죠”
Q. 포도농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처음부터 포도농사를 꿈꿨던 것은 아닙니다. 결혼하고 생계를 위해 벼농사를 지었는데 1년 농사를 지어도 500만 원 정도밖에 벌지 못했어요. “이래서는 먹고살기 어렵겠다” 싶어 소득이 나은 작물을 찾다가 포도를 시작했습니다.
경험도 기술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했으니 쉽지 않았죠. 오랫동안 포도를 재배한 선배들을 따라잡기 위해 계속 배우고 매달렸습니다. 송산에서 ‘포도 좀 잘 짓는다’는 말을 듣기까지 꼬박 15년이 걸렸어요. 먹고살기 위해 시작했던 포도가 결국 제 삶이 됐습니다.
“포도밭에서 자면서 배웠어요…
포기할 생각도 했죠”
Q. 34년 농사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습니까?
처음에는 열심히 일만 하면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품종, 특히 유럽계 포도를 재배하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우리 환경에서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제대로 된 자료도 많지 않았습니다.
결국 직접 부딪치면서 답을 찾아야 했습니다. “포도밭에서 잤어요. 한 10년 동안.” 시설에 투자하고 나무를 심었는데 죽기도 하고 실패도 많이 했습니다. 인건비와 농자재 가격은 계속 오르고 냉해와 동해, 고온과 폭우까지 겹치면서 한때는 “포도를 포기할 생각도 했어요.”
농사는 365일 노력해도 수확할 때 결과가 나옵니다. 한번 실패하면 다시 1년을 기다려야 하죠. 그 시간을 견디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일본서 한 송이 10만 원 포도 보고…
‘할 건 이거밖에 없네’”
Q. 포기까지 생각했던 포도농사를 다시 붙잡은 계기가 있었습니까?
일본에 갔던 것이 결정적인 전환점이었습니다. 포도 한 송이가 5만 원, 10만 원씩 팔리는 것을 보고 놀랐어요. 같은 포도인데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만들어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할 건 이거밖에 없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포도를 포기할 게 아니라 제대로 공부해서 더 좋은 포도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일본을 20여 차례 찾아가 품종과 재배기술은 물론 포장과 유통까지 배웠습니다. 농장에 다양한 품종을 심어 직접 시험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300여 품종을 실증했습니다. 현재도 국내 육성 품종 40여 종을 비롯해 다양한 포도를 재배하며 기후에 강하고 소비자에게 선택받을 ‘다음 포도’를 찾고 있습니다.
“포도는 향이 안 나면 끝”…
품질로 백화점·수출시장까지
Q. 오랜 시행착오 끝에 얻은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저는 단맛만으로 좋은 포도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포도는 향이 안 나면 끝이에요. 달기만 한 것은 이제 소비자가 찾지 않아요.” 품질을 제대로 만들면 그 가치를 알아보는 소비자가 분명히 있습니다.
팜스토리에서 생산한 포도는 롯데·현대백화점 등에 납품하고 일부는 동남아시아로 수출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G마크 인증도 받았고, 국내 육성 포도 품종의 실증·보급과 포도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령 표창을 받은 것도 큰 보람입니다.
하지만 혼자 잘 짓는 것으로 끝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농장을 교육장으로 운영하면서 전국의 포도농가에 경험과 재배기술도 전하고 있어요. “저는 다 가르쳐줘요.” 결국 농업도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자기 농장에 맞는 답을 찾아야 합니다.

“후세가 이상기후 이겨낼
포도를 남겨야죠”
Q. 앞으로 송산포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이라고 봅니까?
가장 큰 과제는 기후변화입니다. 고온에서도 착색이 잘되고 열과가 적으면서 당도와 향을 유지할 수 있는 품종을 찾아야 합니다. 과거에 잘됐던 품종이 앞으로도 계속 잘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샤인머스캣도 한때 큰 인기를 얻었지만 생산이 한 품종에 몰리면서 공급이 늘고 가격이 떨어졌습니다. 소비자의 입맛도 제각각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특정 품종을 따라가기보다 각 농장의 환경과 소비자의 취향에 맞는 품종을 다양화해야 합니다.
농업의 방식도 변해야 합니다. “농산물만 팔아서 돈 버는 게 아니라 농장을 배경으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야 해요.” 팜스토리에서는 8월 29~30일 팜파티를 열어 다양한 포도를 소비자에게 선보이고, 체험·교육 등과 연계해 농업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수도권과 가까운 화성의 장점을 살려 농업과 관광을 결합하는 6차산업도 중요한 방향이라고 봅니다.
무엇보다 이제는 제가 포도를 얼마나 더 생산하느냐보다 다음 세대를 생각합니다. 포도나무는 100년을 살 수도 있지만 사람이 농사짓는 시간은 한정돼 있으니까요. “후세들이 이상기후를 극복할 수 있는 품종을 찾아놓는 것”, 그것이 지금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34년 포도 외길…
이제 ‘다음 포도’를 준비한다
농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정갈하게 관리된 포도밭과 과학적인 재배를 위한 각종 장비, 그리고 한쪽에 자리한 수많은 상장과 상패였다. 34년간 포도에 바친 그의 시간과 노력이 고스란히 쌓여 있는 듯했다.
생계를 위해 시작한 포도농사는 34년의 세월을 지나 300여 품종을 시험하는 도전으로 이어졌다. 포도밭에서 밤을 지새우며 실패의 원인을 찾아온 이 대표는 오랜 농사로 다리에 남은 상처를 마치 훈장처럼 내보였다. 이제 그의 시선은 자신이 수확할 포도보다 다음 세대가 키울 포도를 향하고 있다.
오는 8월 29~30일 팜스토리 팜파티에 이어 9월 5~6일에는 제12회 화성송산포도축제가 열린다. 기후도 소비자의 입맛도 변하지만 이완용 대표가 34년 포도밭에서 얻은 답은 분명하다. 과거의 명성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품종과 시장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한 농부가 평생을 바쳐 일궈온 성과가 송산포도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준다면, 그가 끊임없이 시험하고 있는 새로운 품종들은 송산포도의 내일을 보여준다. 송산포도의 ‘다음 계절’을 준비하는 그의 도전은 오늘도 포도밭에서 계속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