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세상이 감당 못할 신앙

URL복사

1. 대적들을 이기는 믿음입니다(32-34)
2. 고난을 이기는 믿음입니다(35-36)
3. 순교적인 믿음입니다(37~40절)

세상이 감당 못할 신앙(히11:32~40)     

 

본문에 소개하고 있는 사람들은 사사시대부터 선지자들까지의 역사 약1000년(BC14000-400)을 동안 믿음으로 산 선진들입니다. 이들 믿음의 특징을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이라 말합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란 뜻은 ‘이 세상은 그들이 살기에 적당한 곳이 아니다’는 것이며, 믿음으로 살려 하는데 세상은 그들에게 죄와 짝하며 살라고 강요하였지만 그들은 세상이 요구하는 대로 따라 살지 않다가 많은 어려움을 받았으며 믿음으로 사는 것 때문에 조롱하고 핍박하며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으나 그들은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코로나로 인한 어려운 시대에 신앙적인 면에서도 예배와 신앙생활이 무기력해지기 쉬운 때에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으로 살았던 믿음의 선진들의 능력 있는 삶을 본 받아 승리하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그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어떠했습니까?

 

 

1. 대적들을 이기는 믿음입니다(32-34)

 

이들은 세상에서 우리와 동일한 삶 가운데서도 세상과 짝하지 않고 승리한 삶을 살았습니다.

 

1) 이방 나라들과의 접전에서 이긴 자들 이라고 하였습니다.

33절에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나라들'은 이스라엘을 둘러싼 여러 이방 국가들을 말합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정복한 이래 바락은 하솔왕 야빈의 군대장관인 시스라를 이겼습니다(삿4:15). 기드온은 미디안을 물리쳤습니다(삿7:22). 입다는 암몬을 이겼습니다(삿11:33). 다윗은 블레셋은 물론 여부스와 아말렉, 에돔 족속을 정복하였습니다(삼하5장, 8장).34절 하반 절에는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했다]고 하였습니다.

 

 2) 의를 행하기도 하였습니다(11:33).  

이것은 개인적인 공명의 의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하나님의 뜻을 이룬 의를 말합니다. 믿음으로 사사들도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의를 행했습니다. 그들은 자기 나라를 세우고 자기 뜻을 이루는 자들이 아닙니다.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뜻인 의를 이룰 수 있음을 알아야합니다. 이스라엘은 신정정치를 하는 선지자 사무엘에게 말하기를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뉘 손에서 아무것도 취한 것이 없습니다"했습니다.(삼상12:4). 또한 다윗의 경우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公)과 의(義)를 행할 새.......]하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삼하8:15).

 

3) 약속을 받기도 하였습니다(11:33).  

예컨대, 아담에게 아벨에게 노아에게 아브라함에게 이삭, 야곱에게 모세에게 다윗에게도 약속을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들은 아직 보지 못한 것이요, 도무지 바랄 수 없는 약속이지만 믿음으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저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빛나는 미래의 약속을 받았기 때문에 그 약속 성취를 향하여 죽음을 불사하고 저들의 삶을 용감하게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4)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였습니다(11:33).  

그것은 마치 사자굴속에 들어간 다니엘을, 하나님의 사자가 사자의 입을 봉해 주심과 같은 것입니다.

 

5)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였습니다(11:34).  

이는 느브갓네살 왕이 만든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않음이 죄가 되어 평소보다 칠 배나 뜨거운 풀무 불에 들어간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두고 한 말이 됩니다. 그들이 불에 들어간 것은 담대함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의지의 담대함이 아닙니다. 저들은 그 죽음의 불꽃 속에서 머리털 하나 상하지 아니하고, 산채로 불꽃 속에서 다시 나오고 말았습니다.  

 

6) 믿음의 사람들은 칼날을 피하기도 하였습니다(11:34).  

다윗은 사울의 칼날 앞에서 살아남았습니다(삼상18:11). 엘리야는 아합과 이세벨의 칼날 앞에서 살아남았습니다(왕상19:1, 10). 엘리사는 아람 왕의 칼날 앞에서도 건재할 수 있었습니다(왕하6:12-19). 

 

7)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였습니다(11:34).  

드보라는 연약한 여자였으나, 가나안 왕 야빈의 침략을 받고 용맹을 떨쳐 나라를 구원하였습니다. 기드온(삿8:24-27),바락(삿4:12-16), 삼손(삿16:4-22), 입다(삿11:34-40), 그리고 다윗들은 용맹한 사람들이지만, 실은 그들도 우리와 성정이 같은 연약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용맹을 떨쳐 대적 자를 이기는 신앙 영웅의 삶을 살았습니다.

 

8) 믿음으로 여자들은 자기의 죽은 자를 부활로 받기도 하였습니다(11:35).

예컨대, 사렙다의 과부는 엘리야를 통하여 죽은 아들을 되살림 받았습니다(왕상17:23). 수넴의 여인은 엘리사를 통하여 죽은 아들을 부활로 받았습니다(왕하4:35-37). 신약에서 나인성 과부는 죽은 아들을 예수로 말미암아 부활로 다시 받았습니다(눅7:11-14). 베다니의 마르다, 마리아 형제는 예수로 말미암아 죽은 오라비를 부활로 받았습니다(요11:17-44).

 

 

2. 고난을 이기는 믿음입니다(35-36)

 

고난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 고난을 극복하는 힘이 있습니다.

 

1)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하여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치 아니하였습니다(11:35).

'더 좋은 부활'은 무엇인가요? 둘째 부활, 곧 마지막 부활입니다. 예수 재림 시에 받을 영화로운 부활을 말합니다.  저들은 '악형을 받았다'는 말은 '북을 치듯이 죽도록 때린다'는 뜻입니다. 이 형벌은 죄수를 형틀 위에 누인 후에 사지가 팽팽해지도록 말뚝에 잡아 맨 뒤에 사지의 연결 부분을 창으로 찔러 피를 내고 나서, 배와 가슴을 북치듯이 쳐서 죽이는 비인간적인 극형을 가리킵니다. 이천년 기독교 박해사(迫害史)는 사람으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여러 유형의 악형이 예수 신앙이 죄목이 되어, 가해졌습니다. 그럼에도 저들은 더 좋은 부활을 얻고자, 이런 죽음의 고난 때문에 예수를 배반하지 않았다고 하였습니다. 여러분 부활은 다 같이 하지만 그 부활의 영광은 다르다고 했습니다. 더 좋은 부활을 받고자 하는 자는 고난도 죽음도 두려워 않고 구차하게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배교하지 않습니다.

 

 2) 그들은 희롱과 채찍을 받았습니다(11:36).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만 충성 되게 증거 한다는 이유 때문에 제사장 임멜의 아들인 바스훌에게 매를 맞았으며(렘20:2). 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받았습니다(렘29:7, 9). 예수의 사도들은 새 술에 취한 자로 오해를 받았습니다(행2:12). 바울은 염병 같은 놈으로, 미친놈으로 취급을 받았으며(행26:24). 수없는 굶주림과, 목마름, 매 맞음, 헐벗음이 계속되었습니다(고후11:16-33).

 

 3)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험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11:36).  

예레미야가 그러했습니다(렘20:2, 37:15, 39:26). 베드로가 그러하고(행12:3-5), 사도 바울이 그러했습니다(고후11:23). 미가야 선지자가 그 곳에서 고생의 떡과 물을 마셨습니다(왕상22:27). 결코 이 세상 감옥이라 하는 장소가 악인들만 가는 곳이 아닙니다. 의의 사람, 경건의 사람,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수 신앙의 죄목 때문에 들어갔던, 고난의 가시밭도 되었습니다.

이들의 믿음은 어떤 고난이나 유혹이나 죽음이나 세상이 가할 수 있는 것을 다 해 보았지만, 이들의 믿음을 꺾을 수 없었습니다.

 

 

3. 순교적인 믿음입니다(37~40절)

 

진정한 믿음은 죽음을 이기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한 믿음입니다.

 

 1) 돌로 침을 받았습니다(11:37).  

선지자 스가랴는 하나님의 진실을 말하다가 백성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대하24:20-2

 

2). 나봇은 조상 전래의 유업인 포도원을 지키려 하다가 아합왕과 백성이 함께 던지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왕상21:13).

스데반 집사는 예수를 증거 하다가 동족 인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행7:59).  

 

2) 톱으로 켜서 죽임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11:37).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면, 이사야 선지자는 므낫세 왕에 의해 나무로 만든 톱에 의해 그 몸이 두 동강이로 쪼개어져 죽었다고 합니다. 이사야는 므낫세 왕의 우상 숭배 강요에 불복하고, 오히려 그 죄를 책망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3)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당했다고 하였습니다(11:37).

이세벨은 그의 칼로 수많은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왕상18:13). 예레미야 시대 우리야도 그렇게 죽임을 당한바 되었습니다(렘26:23).

 

 4) 양과 염소의 가죽옷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다고 하였습니다(11:37).

엘리야가 그러했고(왕하1:8, 왕상19:9), 엘리사도 그러했고(왕하2:8),세례 요한도 그러했습니다(막1:

 

5). 그리고 역대 환난 시대를 살아가던 모든 앞서간 성도들이 그러했습니다. 저들은 세상에서 발붙일 곳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떠돌이 인생길을 걸었습니다. 광야와 암혈과 산중과 토굴이 저들의 거처가 되고 말았습니다(히11:38). 다윗은 사울을 피하여 도망 생활을 하였습니다. 엘리야는 이세벨의 박해를 피하여 호렙산으로 피신하였습니다.  38절에 괄호에는 '이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였도다'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과 마귀가 이들을 유혹해도 생명을 가지고 협박을 해도 절대 믿음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아무런 손해를 끼치지 못했습니다.

 

 11장 39절로 40절에 "이 사람들이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증거로 받았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였은즉,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니이라" 합니다. 저들은 믿음을 따라 확실히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그 약속된 상급을 이 땅에서 향유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해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 '더 좋은 것'은 우리들이 받았다고 합니다. 그들도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구원이 온전히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가 있는 이분들이 지금도 우리 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우리가 아니면 저희가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에게는 구약성도 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속을 성취하셨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교회를 세우시고, 성경말씀을 주셔서 복음을 받게 하시고, 또 저들이 바라보고 있던 그 모든 예언들이 다 이루어진 것을 증거로 보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이방인들이지만, 우리가 아니면 천국은 온전하지 못하기에 이방인의 수가 다 들어오기까지 세상은 잠깐 보존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얼마나 믿음이 좋아야겠습니까? 그리스도도 나타나지 않으셨고, 계시도 희미한 때에 믿음의 조상들은 이렇게 담대한 믿음으로 세상을 이기고 승리했습니다. 우리들은 구약성도들 보다 더 큰 은혜를 받은 다섯 달란트 받은 자입니다. 많이 받았으니 많이 요구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우리 현실이 힘들고 흔들릴 수 있습니다. 희미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믿음의 선진들이 강력하게 온 삶을 통해서 증언하고 있지 않습니까?

믿음의 대상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의 근거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의 결과는 구원입니다.

 

찬송가357장에 “...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세상을 이기네” 그렇습니다. 우리는 연약하고 무능할 때가 있을지라도 세상을 이기신 주님 안에 있을 때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뿐만 아니라 찬545장에 “...걸어가세 믿음위에 서서 눈과 귀에 아무 증거 없어도...” 그렇습니다. 말씀 붙잡고 험악한 세상을 믿음으로 걸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배너
배너





오늘의 詩

더보기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