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토)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회개는 회복과 축복의 시작

URL복사

Ⅰ.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회개를 호소합니다(2-3).
Ⅱ. 회개할 때 주시는 회복과 축복(4-8).

회개는 회복과 축복의 시작(호14:1-9)   

 

12월 마지막 달을 지내며 가질 수 있는 단어가 있다면 아마도 아쉬움과 바램 그리고 감사일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간절한 바램이 있다면 코로나 이전 자유롭게 예배드리고 생활했던 그 시절로 돌아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호세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하신 사랑의 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선지자 호세아와 그의 가정을 모델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멀리 떠나 있는 이스라엘의 당면한 현실을 깨닫게 하시고, 그들의 삶에 대한 경고와 미래의 비전을 보여주는 호소로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하시면서 돌아와서 회개하면 4-8절은 하나님께서 회복하게 하신다고 하십니다. 주님의 부르심과 약속된 회복의 축복이 무엇인지 깊은 공감과 결단이 있기를 바랍니다.

 

 

Ⅰ.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 회개를 호소합니다(2-3).

 

 원래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살았던 삶으로 회복할 수 있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다양한 대답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은 아마도 회개 즉 마음을 비우고 본질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두 가지의 불의함은 하나님을 멀리하여 잊어버린 무지함과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므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는 일을 행하므로 결국 멸망직전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은 호세아를 통해서 호소하고 절규하시는 것은 여호와께 돌아오라 가까이 하라 그리고 하나님을 알되 힘써 알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며 바람이었습니다.

 

회개는 신앙의 시작이며 회복의 지름길이고 하나님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 준비단계이며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과정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보다 여섯 달을 먼저 와서 복음의 길을 준비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요한은 광야에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외치면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새로운 일을 위해서 깨끗해져야, 비워져야 무엇인가를 새롭게 담을 수 있는 것은 당연합니다.

 

회개에는 무엇보다도 그 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1절에 “네가 불의함을 인하여 엎드려졌느니라”고 한 말씀에 대하여 인정하는 것입니다.

 

아들이 집을 나가면서 아버지께 받을 모든 분깃을 가지고 나가서 허랑방탕하였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와 하나님께 죄를 죄었다는 것을 알고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현실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구원해주시고 광야에서 인도하여주시고 가나안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떻게 했는가요? 그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멀리 떠나서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오라, 돌아오라”고 절규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방법을 두 가지로 제시합니다(2-3절). (2절)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 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입술로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주께 드리리이다” (3절)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께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찌니라”

호세아 본문 2절에서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여호와께 아뢰기를”라는 표현과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라는 표현에서 죄의 고백을 말씀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돌이켜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겠다.’는 뜻입니다. 수송아지는 최상의 제물입니다. 하지만 죄의 고백 없이 드리는 제사는 그것이 최상의 제물을 사용한 최상의 제사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예배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입술로 자백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진정 마음으로 통회하고 입술로 고백하며 이처럼 죄를 죄로 인식하는 것이 회개의 출발점입니다. 죄를 짓고도 죄인 줄 모른다면 치료받을 수도 회복할 수도 없습니다.

‘말씀을 가지고’ 회개는 말씀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아뢰기를’은 기도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길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이천년 기독교 영성의 두 축은 말씀과 기도입니다. 수송아지의 속죄물이 아니라 입술의 참회를 원하십니다. 회개는 마음의 변화(회개보다 회심), 말의 변화, 행동하는 삶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입술의 회개로 그치면 안 되고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3절).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환경과 상황의 지배, 세상을 의지하는 행위를 버려야 합니다. 둘째 ‘말을 타지 아니하며’ 자신의 힘과 군사력을 의지하는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셋째, ‘우리의 손으로 지은 것’ 우상숭배, 물질과 명예, 세속적인 영광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행위를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라고 했는데,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형식적인 신앙생활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을 말합니다.

 

야곱이 하란에서 머물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벧엘로 돌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때 야곱이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창세기 35:2-3절에 “야곱이 이에 자기 집안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너희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삶이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입니다.

 

그리고 마태는 말씀하시는 “‘알곡이 되는 합당한 열매’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 입니다.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후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은 모든 것을 청산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보였습니다. 자신의 재산 절반을 구제물로 내 놓을 것과 토색한 것이 있다면 4배를 갚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것이 삭개오의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마태복음 7:21절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하십니다. 즉 아무리 자신의 죄를 깨닫고 자신의 죄를 고백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이키는 새로운 삶으로의 전환이 없으면 천국은 그림의 떡입니다. 행동과 습관 그리고 생활의 전환입니다.

 

Ⅱ. 회개할 때 주시는 회복과 축복(4-8).

 

호세아 본문 4-8절까지가 회개의 열매를 맺는 자들에게 주시려고 예비하신 회복의 복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본문에서는 ‘알곡이 들어가는 곳간’이 회개의 열매를 맺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4절에 “내가 그들의 반역을 고치고”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반역을 고친다.’는 말씀은 ‘하나님을 배반했던 배교의 행위를 바르게 교정해 주고, 상처를 치료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죄악을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기쁘게 그들을 사랑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의 사랑은 선택된 특별한 사랑을 의미합니다. 이 사랑이 성도를 향한 성별된 하나님의 사랑이며, 누가복음 15장에서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간 탕자에게 베푸신 사랑 즉, 치료와 관계회복입니다.

 

회복된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축복인 하나님의 약속과 영광과 비전이 있습니다.

 

(5절~6절)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리라 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이슬과 같으리니’ 메마른 광야에 내리는 새벽이슬(잠을 자고 있을 때 소리 없이 내리는 선물)처럼 마른 땅에서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은혜와 축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백합화 같이 피겠고’ 하나님께서 꽃 피우게 하십니다. ‘

레바논 백향목 같이 뿌리가 박힐 것이리라’ (용비어천가 제2장)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기에, 그 꽃이 아름답고 그 열매 무성하도다, ‘그 가지는 퍼지며’ 성장과 번영인데 사람이 스스로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감람나무는 올리브나무로서. 넘치도록 채우시는 풍성한 은혜를 상징합니다.

‘그 향기는 레바논 백향목 같으리니’ 그리스도의 향기는 선한 영향력으로 멀리 확산됩니다.

 

(7절) “그 그늘 아래 거하는 자가 돌아올찌라, 저희는 곡식 같이 소성할 것이며 포도나무 같이 꽃이 필 것이며 그 향기는 레바논의 포도주 같이 되리라”

‘그의 곁에 있는 자들도 그로 인해 복을 받아, 황금들판처럼 번성하리라’ (창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의 축복은 나 홀로 누리는 축복이 아니다. 나로 인해 가정과 이웃, 널리 만민이 다함께 누리는 축복이다. 세상의 빛과 세상의 소금이지 이기적인 자기영광과 거대한 왕소금기둥이 아닙니다. 존 웨슬리는 ‘교회를 새롭게, 민족을 새롭게’입니다. 한 사람의 회심으로 가정, 교회, 영국사회를 변화시켰습니다. 수신제가한 후에라야 비로소 치국평천하 하리라.는 것입니다.

  

(8절) “에브라임의 말이 내가 다시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할찌라 내가 저를 돌아보아 대답하기를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네가 나로 말미암아 열매를 얻으리라 하리라”

 

‘에브라임의 말이’ 우리의 믿음은 위기의 순간에 말로 드러냅니다.(불평과 원망, 감사와 찬송) 믿음의 성숙, 신앙의 변화는 말의 변화입니다. ‘내가 우상과 무슨 상관이 있으리요’ 삶의 주관자가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게 될 것이며, 삶의 열매, 해답과 만족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말을 가리켜 ‘찬송(간증)’이라고 합니다. (사43:20~21)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나의 택한 자로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해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구원의 목적이 여기에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에게 베풀어지는 풍성한 복으로 5-8절까지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메마를 대로 메마른 성도에게 새롭고 소생케 하는 신선한 이슬이 되시며, 그 이슬을 통하여 성도는 꽃이 피고, 뿌리를 잘 내리며, 멀리 가지를 펼치게 됩니다.

이처럼 잘 성장한 나무는 결국 탐스럽고 풍성한 열매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9절에 “누가 지혜가 있어 이런 일을 깨달으며 누가 총명이 있어 이런 일을 알겠느냐 여호와의 도는 정직하니 의인은 그 길로 다니거니와 그러나 죄인은 그 길에 걸려 넘어지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이것이야 말로 복중에 복이요 지혜입니다. 순종하는 마음으로 돌아가는 삶! 이것이야 말로 회개요 마음의 결단입니다.

돌아가기 전까지는 사람이 아무리 애를 써도 길이 보이지 않지만 그러나 돌아가면 길이 없던 곳에 길이 생기고, 문이 없던 곳에 문이 생깁니다. 창문도 없는 감옥 같은 곳에 아주 아름다운 창문이 생겨서 모든 것이 다 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순종에는 축복이 오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나 이와 같이 파격적인 하나님의 회복과 축복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거하면서 의인의 축복 또 의인의 행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시사미래신문)

배너
배너





오늘의 詩

더보기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