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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예배의 모습(계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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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천상예배로의 초대(1)
2. 하늘 보좌에는 무엇이 있었는가(2-8)
3. 천상예배의 특징은 무엇인가(8-11)

                      천상예배의 모습 (계4:1-11)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예배하는 자이고 그리심산도 에벨산도 예루살렘도 아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기를 원하십니다. 창조주를 예배하고 구원의 주님을 경배하는 것은 인간의 본분이며 우선적으로 행해야 할 일입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에 유배되어 있을 때, 주의 날에 엄청난 환상을 보았습니다. 갑자기 성령에 감동되어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습니다. 계시록 2~3장은 각 교회의 실상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그 교회에 맞는 메시지, 즉 칭찬과 책망과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4장부터는 완전히 장면이 바뀝니다. 2~3장이 교회가 직면한 지상의 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4~5장은 하늘 보좌에서 펼쳐지는 천상적 관점에서 교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특히 4장은 심판자이신 하나님이 나타나시고 그분이 계신 하늘 보좌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하늘로 올라간 사도요한의 체험을 경함한 것을 같이 나누면서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Ⅰ. 하늘 보좌로의 초대(4:1)

 

사도 요한이 경험한 첫 번째 환상이 지상에서 그리스도를 보고 음성을 듣는 것이었다면, 두 번째 환상에서는 요한이 하늘의 열린 문 가운데로 들림을 받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지금은 “이리 올라오라”는 것입니다. ‘올라오라’는 동사는 단수 명령형으로 오직 요한만을 가리킵니다. 계시록은 ‘문’을 통해 하나님과 예수님과 인간 사이의 교통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문밖에서 두드리고 계십니다(3:20). 성령에 감동이 된 요한이 하늘 보좌를 처음 보았다는 것은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하나님의 통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우리의 눈을 밝히시면 곳곳에서 하나님의 통치가 일어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성경은 교회가 환난을 피해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환난 속에서도 주님의 승리가 주는 용기와 담대함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이라고 증언합니다. 요한이 하늘의 열린 문으로 초대되는 장면은 박해와 환난의 시대를 지나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위로하기 위함입니다. 주님은 현실적인 악의 도전 앞에서 낙담과 절망에 빠져 있는 요한과 그의 공동체를 위하여 이 세상에서 펼쳐지는 현상에 사로잡히지 말고 지상의 세계 너머 하늘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신시켜 주기 원하십니다.  

 

 

Ⅱ. 하늘 보좌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4:2~7)

 

1. 하늘 보좌에 앉으신 이

1하-2절에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요한은 하늘 보좌를 보았지만 보좌 그 자체에 대하여 묘사하지 않습니다. 보좌의 크기는 어떻고, 모양은 어떤지 무슨 재료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습니다. 오직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영광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는 성부 하나님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을 보석의 이미지로 설명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무지개로 표현합니다. ‘벽옥과 홍보석 같고’와 ‘녹보석 같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홍보석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루비요 녹보석은 사파이어입니다. “같고” “같더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모습이 인간의 언어로는 제대로 묘사할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와 차원이 다른 분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요한은 하나님의 형상을 푸른색과 붉은 색으로 찬란한 빛으로 표현합니다. 그 빛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위엄, 거룩함, 순결, 그리고 영광스러움을 나타냅니다. 또 무지개가 하늘의 보좌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다고 합니다. 무지개는 노아의 언약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진노 중에서도 자기 백성을 향한 자비를 베푸신 분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로마 황제의 통치 아래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불안한 현실에서도 교회 공동체가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택한 백성들을 끝까지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2.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는 다른 것은 이십사 장로입니다(4).

4절,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는 이십사 장로는 구속 받은 모든 성도를 대표합니다. “이십사”라는 숫자가 사람에게 사용된 경우는 요한계시록이 유일합니다.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그리스도 이전에 구속 받은 성도를 대표하고, 예수님의 열두 사도는 그리스도 이후에 구속 받은 성도를 대표합니다. 그러므로, 이십사 장로는 온 인류 역사에서 구속 받은 모든 성도를 대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구속 받은 모든 성도들이 모여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구원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것을 의미하고 인간을 구원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습니다.

 

3.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었습니다(6-7).

6~7절,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습니다. 네 생물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를 대표합니다. IVP 성경주석에 따르면, 사자는 들짐승의 대표이고, 송아지는 가축의 대표이며, 사람은 모든 피조물의 대표이고, 독수리는 모든 새의 대표입니다. 그러므로, 네 생물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혹은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는 네 생물이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땅의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 모든 생물의 창조자이시고, 주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는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Ⅲ. 그들의 하는 것은 “예배”입니다(8-11).

 

예배는 영어로 worship로서 복합어 worth와 ship입니다. 즉 가치를 돌리다입니다. 자기가 귀하게 여기던 것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이 예배입니다. 모든 피조물과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은 진정 삶의 본문으로 알고 예배하였습니다.

 

1. 천상예배는 이사야 6장의 예배가 같습니다.

8절,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이 말씀은 구약성경 이사야 6장을 인유한 것입니다. 사 6:1~3,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왜 천상의 예배 장면을 보여 주셨는지에 대해서 알려면, 이사야서 6장의 배경에 대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사야가 천상의 예배 장면을 본 시점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였습니다. (사 6:1) 웃시야 왕은 이스라엘 역사를 통틀어서 가장 오랫동안 통치한 왕이었습니다. 무려 52년 동안이나 남 유대를 다스렸습니다.

 

2.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의 예배의 특징은

그렇다면,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가 드리는 예배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마지막으로 이 부분을 간단히 세 가지로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밤낮 쉬지 않고 세세토록 예배를 드렸습니다(8-10).

8-10절,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이시라 하고” 9-10절에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하나님을 경배할 때에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에게” 이십사장로들이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라고 합니다.

 

네 생물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피조물을 대표한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도 이 네 생물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늘나라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밤낮 쉬지 않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살인하는 것, 간음하는 것, 도둑질하는 것. 물론 이런 것들도 죄입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 그 이상은 예배드리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인간을 창조하셨을까요? 전 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사람의 본분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예배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8절,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네 생물은 밤낮 쉬지 않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거룩”은 히브리어로 “카데쉬(Kodesh)”인데, “구별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 생물이 하나님을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고 세 번이나 반복해서 찬양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시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라, 창조주라는 고백입니다. 모든 피조물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권세는 피조물인 사탄의 권세보다 훨씬 더 높고 위대한 것입니다.

 

셋째, 가장 귀한 것을 감사로 드린다는 것입니다.

10~11절,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예배는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밤낮 예배하는 시간, 하나님을 정확히 알고 예배하는 지식, 이 모든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참된 예배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은 가치 있는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십사 장로는 하나님의 보좌 주위에서 무엇을 드렸습니까?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렸습니다. 여기서 관은 헬라어로 “스테파노스”입니다. 서머나 교회 성도들이 죽도록 충성한 결과 받는 그 면류관과 같은 면류관입니다. 고난과 노력의 결과 받는 상급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십사 장로는 이 면류관을 하나님의 보좌 앞에 드린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내가 이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이유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면류관을 받을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하늘에서 경험한 천상예배의 모습은 우리의 모델이십니다. 큰 위로와 능력이었습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의 행동을 통하여 하늘나라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곳임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하나님을 밤낮 예배하는 성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인정하는 성도,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드리는 성도는 이미 하늘나라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힘들고 어려우신 분이 계시다면,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은혜로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도우시는 방법입니다. 여러분! 천상의 감격스런 예배가 우리의 삶과 가정 그리고 대대로 이어지는 예배자로 이어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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