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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모섬에서 요한의 비전(계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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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밧모섬에서 주일에 예배를 통해 감동을 받습니다.
- 음성을 듣고 환상을 보면서 위로와 큰 용기를 받습니다.
- 진정한 비전과 사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밧모섬에서 요한의 비전(계1:9-20)        

 

 90세 넘으신 어르신께서 평생 동안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들을 겪는다고 하면서 코로나19 전염병과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하여 예배드리는데 마스크를 쓰는 일은 없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도 재난수준으로 보아서 재난기금을 주는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이때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게 되는데요.

 

 오늘 본문의 배경을 보면 AD95년을 전후하여 로마의 도미티니아누스(도미시안) 황제 말기 그는 자신의 제국 통치의 누수현상을 만회하고 통치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자신을 "주와 신"(Dominus et Deus)으로 숭배하도록 강요했습니다. 이 정책의 첫째 희생자들이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하나님 외에 누구도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때 당시 소아시아의 대표적인 기독교 지도자였던 사도 요한이 체포되어 밧모섬으로 유배되어 오게 된 것입니다. 이 사정을 그는 본문 9절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를 증언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로마제국 시대에 밧모섬은 정치,·종교, 중범자들의 유배처였는데 한번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든 생지옥이었습니다. 요한은 이 섬에서 돌을 깨는 일에 동원되었다고도 하는데 이런 인생막장과 절망과 고통과 외로운 유배지에서 평안한 마음으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일까요?

 아마도 밧모섬에 던져진 요한 사도는 이런 질문을 하였을 것입니다. 첫째는,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이고 둘째는, 내가 이곳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라는 물음이었을 것입니다. 사도요한에게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우리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교훈과 지혜를 얻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Ⅰ. 무엇을 해야 하는가? 주일을 지키고 예배했습니다.

 

 대답은 여전히 주일을 기억하고 주님께 예배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10절에서 사도 요한이 "주의 날에 내가--"라고 강조한 것은 그가 이 유배지에서도 얼마나 주일을 사모하면서 예배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일은 한 주의 첫째 날이며 안식 후 이튿날 곧 주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날이었습니다. 처음 그리스도인들은 바로 이 날에 모여 주님의 부활을 축하하고 교회 공동체의 승리를 피차에 격려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날은 승리의 날이요, 예배의 날이요, 축제의 날이었습니다.

 

 주일날 예배를 드림으로 그들은 힘을 얻었고 삶의 모든 문제들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예배함으로 해결되었습니다. 어떤 상황 어떤 지경에 있든지 성도는 그곳에서 예배할 수 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데 꼭 교회가 필요한 것도 아니며 꼭 목사가 있어야 되는 것도 아닙니다. 눈만 감으면 예배를 드릴 수 있으며 아니 눈을 뜨고서도 기도하며 찬송을 하고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예배당에 모일 수 없을 때는 집에서 영상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이 임재하여 성령이 충만한 성도들에게도 많은 핍박이 있었습니다. 이 핍박 가운데 그들이 한 일은 무엇이었나요 바로 예배였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행전20:7)라는 표현이 안식 후 첫날 즉 주일날에 모여서 예배하는 일이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안식 후 첫날에 모였다”는 말이 아주 자주 등장합니다. 그들은 핍박과 고난 가운데서도 안식 후 첫날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으며 핍박과 고난이 있기에 더 자주 안식 후 첫날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지금 사도 요한이 이 낯선 고난의 섬-밧모에서 유배생활을 하지만 어떻게 주일을 잊겠으며 주일 예배의 감격을 포기할 수 있었겠습니까?

10절에 보면 사도 요한은 주의 날에 예배를 드리면서 성령에 감동되어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컨대 계시록4:1-2에서도 요한이 성령에 감동되었고 주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는데 4:10에 보면 이어서 24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사도 요한이 밧모섬으로 유배를 떠날 때 에베소 교인들은 요한 사도를 돕도록 요한의 제자였던 브로고로(행전6:5-브로고로, 예루살렘 7집사중 1인)를 함께 동행시켰다고 합니다. 브로고로 그리고 몇 사람의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밧모섬의 암굴에 엎드리어 주일 예배를 드렸을 것입니다. 지금도 밧모섬에는 사도 요한이 주를 예배하고 계시를 받은 장소를 "계시 동굴 교회"로 보존하고 있고 같은 지역에 후대에 세워진 신학교가 남아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고 낙심될 것 같을 때에 우리에게는 할 일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부르며 찬송하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이것보다 더 소중하고 귀한 것은 없습니다. 이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고 오히려 큰 은혜와 복을 받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자로 부르셨습니다.

 

 

Ⅱ. 무엇을 기대할 수가 있을까? 하나님의 만남입니다.

 

이 기대감이 소망이 되며, 기대감이 곧 힘이며 그 기대감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대할 것이 무엇입니까? (소원 성취하시려고요. 물론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를 드리면서 가장 큰 기대는 것은 바로 주님 만나는 일입니다. 주님을 만나는 것 이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고 가장 큰 기쁨입니다.  대화하고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입니다.

 

1. 나팔 같은 큰 음성으로 자신을 소개하시면서 다가 오셨습니다.

 

주님은 외로운 유배지 밧모 섬에서 고난 가운데서도 주님을 예배하는 요한에게 찾아 오셨습니다. 그리고 나팔 같은 큰 음성으로 말씀하시며 다가 오셨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요한이 무릎 꿇어 기도하며 경배하는 동안 갑자기 등 뒤에서 커다란 음성이 들려 왔다고 합니다. 놀랜 요한은 "당신은 누구십니까?"묻습니다. 음성은 세 갈래로 갈라진 천장 바위틈에서 세 마디로 울려 나왔다고 합니다. 1:8절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자라 하시더라"

 

이는 교회와 역사의 처음과 마지막까지 지키실 뿐 아니라 함께 하신다는 것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이 노년이지만 밧모섬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10-11절).

11절에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고 하십니다.

인간인 사도요한의 계획과 꿈이 아닙니다. 주님이 예배를 통하여 더 크고 더 위대한 비전과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감히 상상할 수 없는 하늘과 원대한 계획을 적어 보내라는 그러므로 일곱교회가 그리고 주님 오실 때까지 오고 오는 시대에 교회가 들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이것은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바로의 손에서 구해내는 것과 사울이 다메섹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이방을 위한 나의 택한 그릇이라는 구원의 사명이상인 것입니다.

 

2. 영안의 눈을 열어 보여주셨습니다(12-18).

 

12절에 “몸을 돌이켜 나에게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

 

일곱 금 촛대를 보았습니다. 촛대는 교회를 의미합니다. 제일 먼저 교회를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 만큼 주님이 교회를 귀하게 여기신다는 의미도 있고 사도 요한이 에베소교회와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가를 보여주는 있는 것입니다.

 

촛대 사이에 인자(人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 띠를 띠고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 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劍)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발에 끌리는 옷 주님이 사도 요한을 통해서 이 메시지를 선포하실 때, 물론 우리 가 전혀 몰랐던 사실을 계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메시지를 받아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 그것은 계시가 아닙니다.

 

발에 끌리는 옷이라고 하면 쉽게 제사장의 옷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특별히 대제사장의 역할을 감당하십니다. 대제사장의 책임은 사람들의 문제와 죄와 고통과 염려를 대신 짊어지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해결자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분 은 지금도 대제사장이십니다. 그러므로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들이 문제를 가지고 나아오면 모든 것을 책임지십니다. 주님은 교회의 사역을 통하여 세상의 짐과 성도들의 짐을 해결하시고 역사 속에 진정한 소망으로 등장하십니다.

 

 가슴의 금 띠 사실 제사장은 금 띠를 띠지 않았습니다. 이 금 띠는 왕이 띠고 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실 뿐만 아니라 왕이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제사장 사역을 통해서 사람들의 문제를 담당하시고 역사 속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분은 지금도 그런 방법으로 역사 속에 관여하시고 하나님의 경륜을 펼쳐 가십니다. 그분은 아직도 왕이십니다. 그분은 제사장이고 왕이십니다.  흰 양털 같고 눈 같은 머리 이 상징의 의미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소극적으로 이것은 예수님의 무죄성(無罪性)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적극적으로는 그분 의 거룩성을 보여 주는 표현입니다.  불 꽃 같은 눈 그분은 나를 꿰뚫어보십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분 앞에서는 아무 것도 숨길 수가 없습니다. 그분은 참으로 공의로우시고 참으로 전지(全知)하십니다. 그분의 이러한 이미지를 불 꽃 같은 눈이라는 표현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풀무에 단련한 주석 같은 발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 가운데 발로 밟아 버려라는 표현이 있는 데, 그것은 정복자 혹은 승리자의 이미지를 연상하게 합니다. 이 발이라는 단어는 로마 당시의 문화적인 표현으로도 자주 사용 되고 있었습니다. 사단을 그 발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는 표현이 성경에도 나오는데, 그것은 정복자의 이미지, 승리자의 이미 지입니다. 주님은 진정한 정복자요,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더군다나 그 발이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과 같다는 것은 그만큼 견고 한 승리자의 발을 가지고 계신 그분이 진정한 역사의 승리자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메시지를 받을 당시의 세상에서는 네로가 승리자였고 도미티안이 승리자였습니다. 박해와 고난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 들은 패배자처럼 보였습니다. 이때 주님은 승리자의 이미지로 등장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분이 역사를 주관하시고 승리자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예수님 때문에 고난 받는 자를 예수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반드시 위로하십니다. 자신을 나타내 보이십니다. 최고의 비전을 보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에 동참하게 하십니다. 마지막 날 천국에 가는 그 정도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하나님 나라를 맛보게 하십니다. 위대한 구원과 영광스러운 주님의 임재를 체험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신앙세계의 비밀이며 즐거움입니다.

 

요한계시록의 핵심주제가 무엇일까요? 19-20절을 보세요. 19절은 요한계시록의 전체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그 전체 내용의 핵심은 20절입니다.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면서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시는 예수님’입니다. 그 예수님이 승리하신 주님이시므로 그 주님의 손에 붙잡힌 교회도 결국 승리하고야 만다는 것입니다. 승리하신 예수님 때문에 교회도 마침내 승리한다는 것이 요한계시록의 핵심주제입니다. 이것이 사도요한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최고의 비전이었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예배로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예배를 통하여 주님의 음성과 환상으로 비전을 통하여 위로와 용기를 얻고 사명을 깨닫고 주님의 뜻을 이루는 비전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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