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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인의 삶(요이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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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를 아는 삶입니다
- 진리를 행하는 삶입니다
- 진리안에서 거하는 삶입니다

참된 신앙인의 삶(요이1:1-11)         

 

코로나19로 인하여 예배당에 들어오는데 손소독을 하고 마스크를 쓰고 사회적 거리를 두고 앉아서 뿐만아니라 공무원이 밖에서 지켜보는 가운데 예배를 드리게 되는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몇일 지나 총선이 있는데 후보들은 다양한 공약을 내세우며 유세를 하는데 심지어 어떤 당은 말하기를 18세 이상은 평생 동안 150만을 주고 결혼을 하면 1억, 아이를 낳으면 5000만을 준다고 합니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는 하지만 마음을 혹하게 하면서 헷갈리게 합니다.

이런 시대의 상황에서 과연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할까요?

 

오늘 예수님과 동고동락을 했던 사도요한의 깊고 유언 같은 편지의 말씀을 상고하면서 지혜와 교훈을 통해서 시련과 어려움 그리고 이단세력으로 미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참된 신앙의 삶이 무엇인지를 듣기를 원합니다.

 

 

1. 진리를 아는 삶입니다(1-3).

 

진리라는 말은 1-4절까지에서 4회나 언급될 정도로 본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리란 무엇일까요? 진리란 ‘참된 도리’를 말하며, 철학적으로는 ‘누구나 인정해야 할 타당한 지식’을 말합니다. 그러나 요한이 말하는 진리란 ‘삼위 하나님과 그 말씀’입니다.

시31:5절에 “여호와는 진리”, 요14:6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진리” 요14:17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 요17:17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고 하였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여호와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합니다. 진리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이기에 세상은 변하고 인생은 늙어가고 유행도 흘러가되 오직 하나님과 말씀은 변치 않고 그 약속은 성취되어 가는 것이 세상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진리를 아는 삶이란 너무나 고귀한 삶입니다. 이와 같은 삶을 살 때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인내하며 극복할 수 있고 영적인 분별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본문은 문안 인사인데, 그 내용은 진리 안에서의 성도의 사랑과 교제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사도 요한은 자신을 '장로'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장로'라는 말은 연장자, 연로한자, 나이 든 노인을 암시하는 말로서 사도라는 말보다 더 친근감이 있는 표현일 것이다. 따라서 본서신은 사도 요한이 노년, 곧 말년기에 쓴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본서신의 수신자를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택하심을 입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구원을 위하여 부름을 받는 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택하심을 입은 부녀'라는 표현은 교회를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자연스럽게 그의 자녀들은 신자들입니다.

 당시의 가정적인 개체의 한 교회를 의미하면서 나아가서 주님의 신부된 교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그의 교회의 신자들에게 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들이 바로 수신인입니다.

 

사도 요한은 수신자들을 참으로 사랑하는 자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이는 서로가 예수 생명 안에 있고 진리 안에 함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자기뿐만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들도 그러하다고 하였습니다. 여기 진리를 아는 자는 바로 예수를 구주로 믿는 자요 하나님의 자녀 된 자를 말함입니다. 그리고 진리는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본문에서 그가 말하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 곧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가리킵니다.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6에서 자신을 진리라고 말씀하셨고 요한복음 17:17에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바울은 에베소서 1:13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진리의 말씀 곧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것을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자들'로 표현하였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아는 자, 곧 믿는 신자들도 사도 요한 같이 주의 교회를 사랑하고 믿음의 형제들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는 진리 안에 있는 자이기에 서로 사랑하는 관계 속에 있는 것입니다. 주를 믿는 모든 성도들이 다 진리 안에 있기에 서로는 하나님의 한 가족이며 생명과 사랑의 한 공동체가 된 것이죠. 고로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으로 서로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 안에 영원히 거하는 진리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사도 요한이나 수신자나 다른 모든 신자들을 하나로 연합하는 표현이 바로 진리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믿는 신자들 안에는 진리가 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진리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합니다. 이렇게 진리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어진 우리들은 서로를 사랑해야 할 것 밖에 없습니다.

 진리는 형제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내포하며(요일2:7,8; 3:11) 또한 진리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근본이며 동기가 되는 것입니다.

 

 

2.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입니다(4-8절)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을 깨닫게 해주면 전심으로 준행하겠다”고 하였습니다.(시119:34). 하나님의 진리를 깨닫는 사람은 진리에 순종하게 합니다. 즉 자신의 삶의 전영적인 진리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진리를 행하는 삶은 참 진리를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한없는 축복을 내려 주십니다. 때때로 열정적이고 신실한 성도들도 이 진리의 행함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컨대 행함이 없는 말만의 사랑이 난무할 뿐 자신의 삶 가운데서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것은 진리 안에서 행하지 못하는 삶입니다. 야고보서2:17에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진리를 깨닫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허탄한 믿음의 소유자요 영적으로 죽은 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를 행함으로 산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 야고보서 1:22에 “진리를 듣고서 행하지 않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것이라”하였습니다. 자기를 속이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 됩니다.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것을 행하는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이 실천에는 기도와 봉사가 요구됩니다. 이제 우리 성도는 기도와 봉사의 생활을 함으로써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본문은 신자가 진리 안에서 행함을 보고 기뻐하는 사도 요한의 기쁨을 증거 하면서 우리 모두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가 될 것을 교훈합니다. 또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대로 사는 것을 뜻하며 그것은 또 다른 말로 서로 사랑하는 것을 뜻한다. 진리와 사랑은 모든 성도에게 필수적인 두 요소이다.

 

 본 사도는 그들이 진리 안에서 행하는 것을 보고 심히 기뻐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죄인들의 심령 속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일을 보는 것은 하나님께 큰 기쁨일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에게도 심히 큰 기쁨입니다. 진리 안에서 계명을 잘 지키며 사는 좋은 믿음은 다른 신자들에게 귀감이 될 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큰 기쁨이 됩니다.

5절에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평소에 사랑을 잘 실천하고 있는 자에게 이같이 권면하고 있다. 잘 안하는 자에게 무엇을 하자고 권면하면 반감을 가지지만 잘 하는 자이게 권면을 하면 잘 알아듣고 더 잘하게 됩니다. 따라서 본문은 여기 부녀가 사랑을 잘 실천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 안에서 계명을 잘 지키며 사랑을 잘 실천하고 있는 자에게 계속적으로 더 잘 할 수 있도록 위하여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미혹하는 자를 물리치라(7-8)고 합니다. 7절에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는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여기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혹하는 자는 속이는 자라는 뜻으로 이단자를 가리킵니다. 이단은 마귀의 활동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무엇을 더하거나 그 말씀을 빼거나 혹은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는 것입니다(갈1:8,9;딤후 2:17,18). 벌써 사도 시대에 많은 이단자들이 교회 안팎에 나타났습니다. 사도요한은  그들의 정체에 대하여 언급을 하면서 주의를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본 절에서 언급된 이단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셨음을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언급을 하고 있는데, '육체로 오심을'이라는 말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라고 칭하신 그는 태초부터 계셨던 하나님이시다(요 1:1). 그가 때가 되어 사람이 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신적인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셨던 그가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따라서 성육신 하신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 되심이다.

 

 

3. 진리 가운데 거하는 삶입니다(9-11)

 

진리 되신 말씀 안에서 거하는 삶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삶이요 동거하는 삶입니다.(9절) 요한복음 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우리는 누구입니까? 요한복음 15장 5a절에 보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가지입니다. 예수님께 붙어있는 가지입니다. 내가 나무가 아니고 가지란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영적인 양분을 공급해 주지 않으시면 우리는 한 시도 살 수 없습니다. 5b절에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참 포도나무도 되신 예수님을 떠나서 우리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가지입니다.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나의 안에 거하라. 나는 내 하나님이니 모든 환난 가운데 너를 지키는 자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널 도와주리니 놀라지 말라. 네 손 잡아 주리라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내 것이라 너의 하나님이라

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노라 너를 사랑하는 네 여호와라

 

한 조류학자가 깊은 산속에서 애무새 둥지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조류학자는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는 앵무새 새끼를 새장에 넣어 마당 한족의 나무에 매달아 놓았습니다. “이제는 매일 아침 앵무새의 아름다운 노래를 들으며 눈을 뜰 수 있겠군” 조류학자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부터 어미새가 나타났습니다. 어미새는 새끼에게 부지런히 먹이를 날아다 주었습니다. 학자는 어미새의 모정에 감동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새장의 새끼 앵무새가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학자는 사인(죽은 이유)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어미새는 새끼에게 독사과를 먹인 것입니다. 어미새는 자신의 새끼가 새장에 갇혀 있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그만 그렇습니다. 새는 자연에서 살아야 합니다.

인간도 우리를 창조한 진리 안에서 거하며 살아야 진정한 자유와 구원과 활기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사도 요한이 어려운 상황에서 믿음을 지키며 살려는 자들에게 무엇을 원하시고 있습니까?

진리를 바로 알고 진리를 행하고 그 진리 안에 거하는 삶을 살라하십니다. 그런데 말은 쉬운데 과연 어떻게 살 수 있을까요? 겸손입니다.

어떤 날 랍비가 말하기를 “진리는 길에 널려 있는 돌맹이처럼 흔한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 제자가 묻기를 “선생님 그렇게 흔한 것인데 왜 사람들은 진리를 터득하지 못합니까? 랍비는 다시 대답하기를 “그러야 사람들이 허리를 굽히기 싫어하기 때문이지. 허리를 굽히기 싫어하여 돌을 주을 수 없단다” 그렇습니다. 겸손히 주님을 바라보면서 말씀으로 돌아갑시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너희가 진리와 사랑 안에 있으며 많은 열매를 맺으려니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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