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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사랑하라(요한1서4: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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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셧습니다
- 우리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요한1서4:7-12)       

 

4월 첫 주일 식목일이며 한식입니다. 봄꽃들 벚꽃, 목련, 진달래 그리고 개나리가 활짝 피었습니다만 세상은 코로나 19로 인하여 꽃 축제 등이 취소되고 사회적 거리두기로 서로를 경계하는 모습은 마치 바울이 예언하였듯이 딤후 3장에 “말세에 ... 사랑이 식어지고”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인 요한1서를 기록한 사도 요한은 예수님과 마지막까지 함께했던 제자로서 또한 적그리스도들이 난무하고 예수님의 사랑의 실천과 전도를 들으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던 제자로서 하신 말씀은 우리 시대를 살아가는 저희들에게 꼭 필요한 말씀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사랑의 의미를 알고 인생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가를 정립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7-8).

 

본문 7-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라고 하며, 사랑은 누구에게 속한 것이라 하였습니까?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사도 요한은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라고 하며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은 바로 사랑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말이 바로 사랑입니다. 인생사에서 사랑이 최고요 최선이요 최상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많은 소설이나 문학 작품들을 보면 사랑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아도 연속극을 보아도 사랑이 주제인 것이 많습니다. 노래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 많습니다. 사랑은 모든 시대 모든 사람들의 주제임에 틀림없습니다.

사람은 사랑을 먹고 사는 존재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삶이 의미가 있고, 사랑이 있어야 소생하는 힘을 얻습니다. 또 사랑이 있으면 병도 치유되고, 심지어 사랑이 있으면 죽음도 잘 받아들일 수 있고, 사랑에 감격하면 죽음도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만일 사랑이 결여되면 모든 것의 의미를 상실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사랑 때문에 울기도하고, 사랑 때문에 죽음을 결심하기도 합니다. 사랑은 위대하고 강력한 힘입니다.

 

그러면 이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이 사랑의 근원은 어디일까요? 사도 요한은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였습니다. GOD is Love,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입니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랑은 바로 사랑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어느 신학자의 주장대로, 사랑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여러 가지 일들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사랑은 하나님이 하시는 유일한 일입니다. 따라해 보실까요? “사랑은 하나님이 하시는 유일한 일이다.”

 

사도 바울은 사랑을 논리적으로 표현 한 반면에 사도 요한은 함축적인 시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사랑이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것이라"고 논리적으로 말하였습니다. 반면에 사도 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라,“라고 합니다.

 

미국 초등학교의 어느 클래스에서 천지창조에 대하여 선생님이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첫째 날에는 빛을 만드시고, 둘째 날에는 하늘을 만드시고, 셋째 날에는 바다를 만드시고, 이렇게 이야기를 하다가 마지막에 사람을 만드셨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왜 사람을 맨 마지막 날에 만드셨을까요?” 그랬더니 한 아이가 손을 번쩍 들고 말합니다. “선생님, 하나님이 첫날 사람을 만드셨다면 어떻게 되었겠어요? 빛도 없고 하늘도 없고 나무도 없고 공기도 없어서 죽잖아요. 하나님은 사람을 사랑하셔서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다 만들어 놓으시고 맨 나중에 만드신 거지요” 이 아이의 말인즉 하나님의 창조도 사랑 없이 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마땅히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9-10).

 

본문 9-10절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라고 하며,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살리려 하심입니다. 또 사도 요한은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라고 하며,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누구를 보내셨다고 합니까?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즉 우리의 대속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아들 예수를 통해서 나타났다는 뜻입니다.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우리에게 내어 주심으로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우리에게 자기의 사랑을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바울 사도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5:8절)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주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확증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사건은 과연 하나님은 사랑이심을 나타내고 확증한 사건입니다.

 

다섯 아들 중에서 남에게 줄 수 있는 아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3장 16절을 생각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절)

하나님은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셔서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인 외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저와 여러분을 보시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할 수 있도록 그 아들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은 우리를 살리기 위해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 밖에 없는 목숨을 십자가에서 내어 주셨습니다. 저와 여러분을 위한 제물이 되어주신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은 독생자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사랑이요, 독생자를 제물로 내어주신 사랑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마땅히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3.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11).

 

본문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어떻게 하는 것이 마땅합니까?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 사랑을 입었은즉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우리도 서로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저와 여러분이 이제부터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고 감동하고 감사하는 것으로 끝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이제는 서로에게 베풀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서로에게 나누어주어야 합니다. 나도 이제는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따라하실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마땅하다는 말은 의무로 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대한민국 남자라면 병역이 의무인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저와 여러분은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의무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아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리라”(요13:34절)

또 예수님께 사랑받았던 제자, 사도 요한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절) 이 말씀의 요지는 사랑은 이론이 아니고 실천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위해서 만날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을 보면서,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하면서 계속 연구만 합니다. 사랑의 원칙이 무엇일까? 사랑의 철학은 무엇일까?

독일의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를 아시지요? 철학자들이 모두 그렇겠지만, 이 분도 매우 논리적이고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매사에 신속한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우유부단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한 여인과 사귀게 되었는데, 사랑하면서도 도무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여인이 견디다 못해서 청혼을 했어요.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저와 결혼해 주세요.” 이 말을 들은 칸트가 ‘저도 사랑합니다’ 라고 말하면 될 것을 “한 번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서로가 사랑을 확인했으면 됐지, 뭘 더 생각할 것이 있어요?

칸트는 그때부터 결혼과 사랑에 대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답니다. 도서관에 가서 결혼에 대한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사랑에 대한 자료를 모았습니다. 결혼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 글을 읽으면서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그러다가 그 여인과 결혼하기로 최종 결론을 내리고, 드디어 그 여인의 집에 찾아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나와 결혼해 주세요. 내가 당신을 사랑합니다.” 그 때에 그 여인의 아버지가 나와서 말했습니다. “너무 늦었소. 내 딸은 이미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네.”

 

하나님의 사랑을 누가 더 많이 연구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의 사랑은 말이 아니고 실천인 것입니다.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그대로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실천할 때에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노래는 불러야 노래이고 진주는 꿰어야 보배이며 약속은 실천해야 의미가 있듯이 사랑은 실천해야 완전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라면, 단 한 가지라도 실천할 때에 비로소 하나님의 사랑이 사랑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국가와 민족을 사랑한다면 투표로 실천을 해야 합니다. 사랑을 위해서는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무작정하면 불륜이 되고 이후에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어 후회합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보여준 분명한 기준인 살리려는 것인가, 화합하고 정직한 것인가?

천재 파스칼이 팡세에서 한 말처럼 신앙과 사랑은 선택입니다. 이번 선거에서 다섯 가지를 선택하되 이번 총선에서 조국이냐 윤성열이냐? 내 돈이냐 네 돈이냐? 주사파(김일성의 주체사상이 민족의 희망)냐 아니면 주님을 생각하는 것이냐 친 중국이냐 친 미국이냐 그리고 이후 통일이 되어 대한민국이냐 아니며 조선 인민공화국이냐를 생각하면서 선택을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설교를 마치려 합니다.

 

인생의 전부와 같은 사랑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독생자를 통하여 사랑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사랑은 실천해야 할 마땅한 의무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로서 첫째, 하나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둘째, 교회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교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목사의 근심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함께 짐을 나누어져야 합니다. 셋째, 지체들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번 선거를 통하여 국가와 민족을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사도 요한의 유언처럼 경험하여 호소하시는 말씀 ‘하나님이 사랑을 보여 준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 우리 교회와 내 삶에 슬로건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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